자동소화설비 제대로 작동했는데…'배터리 불' 왜 진화 늦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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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판교데이터센터 발화 직후 진화용 할로겐 가스 계속 분사 확인
'케이싱' 된 배터리 내부 진화 한계…"가스소화설비만으론 어려워"
올 2월 전기저장시설 소화설비 규정 바뀌었지만 이전 시설은 미적용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먹통' 사태를 유발한 지난 15일 SK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소화약제를 분사하는 자동소화설비가 정상 작동했으나 진화에는 실패하자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이 붙은 배터리는 전기차 등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로, 화재 시 이 같은 설비만으로는 진압이 어렵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2월 전기저장시설에 대용량 스프링클러를 의무 설치하는 규정이 마련된 만큼, 기존의 시설에도 이를 적용하자는 제언을 하고 있다.
◇ 발화 뒤 할로겐 가스 계속 분사됐는데 왜 못 껐나
지난 15일 오후 3시 19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 판교 데이터센터 A동 지하 3층 전기실에 있던 배터리에서 스파크가 일어난 뒤 불이 시작됐다.
화재 직후 400평 남짓한 해당 구획 내에 설치된 자동소화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 청정소화약제(할로겐가스)가 분사됐다.
CCTV를 확인한 경찰 및 직접 진화 작업을 한 소방당국 모두 설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현장에 진입해 주변에 있던 이산화탄소 소화기 등을 이용해 진압을 시작했지만, 소화기를 써도 불이 붙은 배터리의 온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오후 4시 52분 SK C&C 측에 "화재 진압에 물을 사용해야 한다.
누전 위험이 있으니 전력을 차단해달라"고 요청했고, SK C&C는 전체 전력 공급을 차단했다.
이때부터는 카카오 연계 서버 외에 네이버 등 모든 서버 기능이 중단됐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불은 물로 꺼야 한다"며 가스소화설비는 질식 방식, 즉 연소의 3요소인 산소, 가연물, 점화원 중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인데, 물은 질식은 물론 냉각 효과까지 있어 가스와 비교할 때 진화에 더욱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터센터 등 전기저장시설 화재에서 물을 사용할 경우 더 큰 재산 피해 등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가스를 쓰는 것인데, 한계가 있다"며 "지하 3층의 전기실이라는 밀폐된 공간, 그리고 배터리 자체가 케이싱(casing) 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가스소화설비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배터리에서 튄 '스파크'…추정되는 화재 원인은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으로 꾸려진 합동감식팀은 배터리 부근에서 스파크가 일어난 뒤 불이 난 점 등을 토대로 화재 원인을 전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 모듈 1점을 정밀 감식할 계획이다.
수거한 배터리는 리튬이온 방식이다.
현대 전자기기와 전기설비 등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거의 리튬이온 방식이다.
전기차는 물론이고 휴대전화와 노트북, 친환경 발전기에 쓰이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간다.
통상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에 의해 발생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되는데,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과열되면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난다.
충전 완료 이후에도 계속 전력이 공급되는 등 과충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배터리 시설에는 과충전을 막기 위해 충전량을 조절하는 방식의 방지 장치가 있다.
이 또한 이상이 생기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배터리 화재는 진화가 매우 어렵고, 내부에서 계속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 꺼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영주 교수는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기차 화재의 경우 열 폭주 현상으로 인한 것이 많다"며 "화재 시 계속 (배터리) 안에서 화학반응이 일면서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 반응이 끝날 때까지 불이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이번 화재 원인에 관해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올해 들어서야 새로운 안전기준 마련…이전 시설은 여전히 '사각지대'
현재의 가스소화설비 만으로는 데이터센터 등 전기저장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소방청은 지난 2월 전기저장장치 시설에 대용량 스프링클러 설비를 갖추도록 하는 '전기저장시설의 화재안전기준'을 마련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전기저장장치 시설은 1㎡에 분당 12.2ℓ 이상의 수량을 30분 이상 방수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 설비를 갖춰야 한다.
불이 난 배터리가 사실상 물에 잠기도록 해 물리적으로 온도를 낮춰 진화하는 개념이다.
올해 2월 25일 시행된 이 규정은 2016년 8월 설립된 SK 판교 데이터센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기존 배터리실은 소방시설법이 정한 전기실, 발전실, 변전실 등과 같이 분류돼 소화설비의 화재안전기준에 따라 가스소화설비 만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국 다른 데이터센터도 가스소화설비만을 갖춘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 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데이터센터 수는 156개다.
이들 모두 새로운 기준 시행 전에 설립된 곳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새 안전기준이 마련됐지만, 현재 운영 중인 절대 다수의 데이터센터는 여전히 비슷한 화재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화재 위험이 예상됨에도 소방기준 달성에만 급급한 안전의식이 못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 데이터센터도 피해 예방을 위해 강화된 기준에 맞춰 소방설비를 보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물을 뿌리는 방식이 데이터 보호 등의 이유로 어렵다면 개별 배터리에 공급되는 전원만 차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SK C&C 관계자는 "우선은 복구에 전력을 쏟고 이후 대책 방안을 강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케이싱' 된 배터리 내부 진화 한계…"가스소화설비만으론 어려워"
올 2월 전기저장시설 소화설비 규정 바뀌었지만 이전 시설은 미적용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먹통' 사태를 유발한 지난 15일 SK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소화약제를 분사하는 자동소화설비가 정상 작동했으나 진화에는 실패하자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이 붙은 배터리는 전기차 등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로, 화재 시 이 같은 설비만으로는 진압이 어렵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2월 전기저장시설에 대용량 스프링클러를 의무 설치하는 규정이 마련된 만큼, 기존의 시설에도 이를 적용하자는 제언을 하고 있다.
◇ 발화 뒤 할로겐 가스 계속 분사됐는데 왜 못 껐나
지난 15일 오후 3시 19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 판교 데이터센터 A동 지하 3층 전기실에 있던 배터리에서 스파크가 일어난 뒤 불이 시작됐다.
화재 직후 400평 남짓한 해당 구획 내에 설치된 자동소화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 청정소화약제(할로겐가스)가 분사됐다.
CCTV를 확인한 경찰 및 직접 진화 작업을 한 소방당국 모두 설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현장에 진입해 주변에 있던 이산화탄소 소화기 등을 이용해 진압을 시작했지만, 소화기를 써도 불이 붙은 배터리의 온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오후 4시 52분 SK C&C 측에 "화재 진압에 물을 사용해야 한다.
누전 위험이 있으니 전력을 차단해달라"고 요청했고, SK C&C는 전체 전력 공급을 차단했다.
이때부터는 카카오 연계 서버 외에 네이버 등 모든 서버 기능이 중단됐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불은 물로 꺼야 한다"며 가스소화설비는 질식 방식, 즉 연소의 3요소인 산소, 가연물, 점화원 중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인데, 물은 질식은 물론 냉각 효과까지 있어 가스와 비교할 때 진화에 더욱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터센터 등 전기저장시설 화재에서 물을 사용할 경우 더 큰 재산 피해 등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가스를 쓰는 것인데, 한계가 있다"며 "지하 3층의 전기실이라는 밀폐된 공간, 그리고 배터리 자체가 케이싱(casing) 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가스소화설비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배터리에서 튄 '스파크'…추정되는 화재 원인은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으로 꾸려진 합동감식팀은 배터리 부근에서 스파크가 일어난 뒤 불이 난 점 등을 토대로 화재 원인을 전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 모듈 1점을 정밀 감식할 계획이다.
수거한 배터리는 리튬이온 방식이다.
현대 전자기기와 전기설비 등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거의 리튬이온 방식이다.
전기차는 물론이고 휴대전화와 노트북, 친환경 발전기에 쓰이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간다.
통상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에 의해 발생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되는데,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과열되면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난다.
충전 완료 이후에도 계속 전력이 공급되는 등 과충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배터리 시설에는 과충전을 막기 위해 충전량을 조절하는 방식의 방지 장치가 있다.
이 또한 이상이 생기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배터리 화재는 진화가 매우 어렵고, 내부에서 계속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 꺼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영주 교수는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기차 화재의 경우 열 폭주 현상으로 인한 것이 많다"며 "화재 시 계속 (배터리) 안에서 화학반응이 일면서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 반응이 끝날 때까지 불이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이번 화재 원인에 관해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올해 들어서야 새로운 안전기준 마련…이전 시설은 여전히 '사각지대'
현재의 가스소화설비 만으로는 데이터센터 등 전기저장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소방청은 지난 2월 전기저장장치 시설에 대용량 스프링클러 설비를 갖추도록 하는 '전기저장시설의 화재안전기준'을 마련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전기저장장치 시설은 1㎡에 분당 12.2ℓ 이상의 수량을 30분 이상 방수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 설비를 갖춰야 한다.
불이 난 배터리가 사실상 물에 잠기도록 해 물리적으로 온도를 낮춰 진화하는 개념이다.
올해 2월 25일 시행된 이 규정은 2016년 8월 설립된 SK 판교 데이터센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기존 배터리실은 소방시설법이 정한 전기실, 발전실, 변전실 등과 같이 분류돼 소화설비의 화재안전기준에 따라 가스소화설비 만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국 다른 데이터센터도 가스소화설비만을 갖춘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 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데이터센터 수는 156개다.
이들 모두 새로운 기준 시행 전에 설립된 곳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새 안전기준이 마련됐지만, 현재 운영 중인 절대 다수의 데이터센터는 여전히 비슷한 화재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화재 위험이 예상됨에도 소방기준 달성에만 급급한 안전의식이 못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 데이터센터도 피해 예방을 위해 강화된 기준에 맞춰 소방설비를 보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물을 뿌리는 방식이 데이터 보호 등의 이유로 어렵다면 개별 배터리에 공급되는 전원만 차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SK C&C 관계자는 "우선은 복구에 전력을 쏟고 이후 대책 방안을 강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