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들이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사업을 빠르게 정리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14조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신도시 건설사업을 포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변수가 불거지면서 내실 다지기에 나선 기업이 많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 중단한 오일뱅크…14조 이라크 사업 접은 한화
17일 한화그룹에 따르면 한화건설은 지난 7일 ‘비스마야신도시 및 사회기반시설 공사’ 발주처인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에 공사 계약 해지를 통지했다. NIC가 공사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한화건설이 2012년부터 단독으로 추진한 이 사업은 비용만 14조원을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2027년 말까지 이라크 비스마야 지역에 주택 10만 가구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NIC가 공사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서 스텝이 꼬였다. 이 사업과 관련한 한화건설의 미수금·미청구공사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8280억원(상각처리대금 제외)으로 나타났다.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은 부실을 일찌감치 털어내기 위해서다. ㈜한화는 100% 자회사인 한화건설을 오는 31일 흡수합병한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달 27일 충남 서산 대산 공장에 3600억원을 들여 추진하던 원유정제설비(CDU)·감압증류기(VDU) 설비 투자를 전격 중단했다고 공시했다. CDU·VDU는 원유를 끓여 휘발유 경유 중질경유 등의 정제유를 생산하는 핵심 설비다. 2019년 투자를 결정했지만 2020년 코로나19로 투자를 미루다 이번에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회사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폭등 탓에 공사를 이어가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솔루션도 1600억원을 들이는 질산유도품(DNT) 생산 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한다고 지난달 7일 공시했다. DNT는 가구 내장재와 자동차 시트용 폴리우레탄 원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충북 청주 M17 반도체 공장 증설을 보류했다. 반도체 메모리 시장이 침체할 것이라는 관측을 감안한 행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