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움베르토 에코가 전하는 고전과 혁신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다.”

프랑스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 하더라도 과거와 고전의 어깨에 올라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 말을 이어받아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거인과 난쟁이’에 오랜 시간 천착했던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1932~21016)다. 에코는 첫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철학, 미학, 대중문화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발히 활동했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 “우리는 난쟁이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다. 우리는 작지만 때로 거인보다 멀리 본다”고 썼다.

에코에 관한 신간 <에코의 위대한 강연>의 첫 문장도 “나는 늘 거인과 난쟁이에 마음이 끌렸다”로 시작된다. 이 책은 그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적인 문화 축제 ‘라 밀라네지아’에 참여해 강연 형식으로 쓴 글을 하나로 모은 것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라 밀라네지아는 예술 문학 철학 등의 저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문화 교류의 장이다. 에코는 이곳에 초청받아 예술의 불완전성, 미와 추의 본질, 절대와 상대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해 강연했다.

에코에 따르면 ‘거인과 난쟁이’는 오래된 ‘부친 살해’에 대한 은유 가운데 하나다. 기존의 것을 지키려는 자들과 혁신을 추구하는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논쟁을 의미한다. 아무리 새로워 보이더라도 혁신의 기준은 결국 과거에 맞춰져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성당이 기존 틀을 유지하며 중축과 보수를 거듭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과거를 딛고 변화하는 발전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에코는 독자들을 고전과 혁신의 세계로 동시에 초대한다.

그와 함께 단테, 사르트르 등을 경유하고 나면 어느새 현재에 서 있으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