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 상장사인 A사의 최모 대표는 올해가 석 달가량 남은 시점에 돌연 연간 경영계획을 백지화했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20% 넘게 급등하면서 대형 프로젝트 입찰 가격이 발주처 예산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간 매출의 30%(약 290억원)를 차지하는 대형 사업이 좌초할 위기에 처하자 최 대표는 “애써 마련한 경영계획이 무의미해졌다”고 허탈해했다.

중소기업들이 금리 인상과 환율 상승의 쓰나미에 휩쓸려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업종과 관계없이 환율·금리 위험 회피(헤지) 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곳이 대다수여서 ‘충격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정부의 각종 정책 지원이 종료되는 내년부터 대규모 연쇄 도산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초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 상당수는 하루하루 급변하는 원재료 가격과 대출 금리 부담으로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모습이다.

수도권에서 표면처리 전문기업을 운영하는 B사의 김모 대표는 원재료인 도금 용액 신규 계약 체결을 앞두고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 사용 도금 용액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구매 비용이 올 들어 20%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그는 “환율 영향으로 원가 부담이 커졌을 뿐 아니라 금리마저 높아지면서 은행 대출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며 “1년치 영업이익을 모두 까먹을 지경”이라고 했다.

환율·금리 부담에 아예 사업에서 손을 떼는 기업도 잇따르고 있다. 경남에 있는 금속가공업체 C사는 20년째 철강과 스테인리스 등을 수입해 가공한 뒤 가전, 주방 기업에 공급해 왔다. 하지만 지난 8월부터는 신규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 주문이 늘수록 손해가 커져서다. 이 회사 이모 대표는 “흑자냐 적자냐가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까지는 시중에 풀린 정책자금이 많고 은행 대출 만기도 연장돼 위기 현실화가 지연되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책 지원이 종료되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중소기업 위기가 지표로 드러나고 줄도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병근/안대규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