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콘서트 무료라더니…"자일리톨을 몇 개나 샀는지 몰라요"
"콘서트에 가고 싶어서 자일리톨을 몇 개나 샀는지 몰라요. 햄버거도 먹고, 도넛도 샀어요. 차라리 돈 주고 티켓을 사는 게 비용이 덜 들겠어요. 부산시가 재정적으로 지원을 하지 않으니 소속사가 기업 협찬을 받을 수밖에 없죠. 결국 팬들 주머니 사정만 어려워지고요. 무료 콘서트도 부산시 입장에서나 무료 아닌가요?"

- 방탄소년단 팬 유모씨(36)

방탄소년단(BTS)이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EXPO) 유치를 기원하며 열기로 한 무료 공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연비를 충당하기 위해 협찬사의 티켓 응모 이벤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팬들이 떠안게 돼서다.

공연 비용 70억, 돌고 돌아 결국 팬들 부담

방탄소년단은 오는 15일 저녁 6시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BTS 인 부산'(BTS in Busan)을 개최한다. 5만여명 규모의 이 콘서트는 무료 공연으로 기획됐다.

개최 비용은 공연 주최·주관사인 BTS 소속사 하이브가 부담한다. 이번 공연에 필요한 비용은 약 70억원으로 전해졌다. 후원기관인 부산시와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는 별도로 비용을 지원하지 않는다.

하이브는 행사에 투입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 스폰서의 협찬을 받는다. 협찬 기업은 티켓 이벤트를 진행해 수익을 내고 있다. 이벤트 제품을 사거나 일정액 이상 구매하면 응모권을 주고, 응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첨자를 추첨하는 식이다. 다만 하이브 측은 "초대권 등의 정확한 객석 수는 확인해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SKT는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1일까지 휴대폰을 구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콘서트 티켓 교환권을 제공한다. SKT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아이폰13의 출고가는 128GB 107만8000원, 256GB 122만1000원, 512GB 148만5000원이다. Z 플립4의 출고가는 256G 135만3000원, 512GB 147만4000원에 달한다.

롯데GRS의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크리스피크림도넛은 2일까지 BTS 콘서트 응모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벤트 제품을 사 먹으면 응모권이 지급된다. 응모 횟수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크리스피크림도넛의 이벤트 제품 가격은 각각 7300원, 5900원, 9600원이다. 롯데GRS의 티켓 이벤트에 모두 참여하면 하루에 2만2800원이 든다.

롯데제과도 지난달 30일을 끝으로 티켓 교환권 제공 이벤트를 마치고 이달 4일 당첨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매장별로 자일리톨을 5000원 이상 구매하면 자동으로 응모되는 방식이다. 대형마트와 슈퍼, 편의점 등에서 응모 가능해 팬들은 다양한 판매처를 방문하며 여러 차례 응모했다.

햄버거 먹고 도넛 사며 '응모권 전쟁'

티켓 추첨 이벤트 참여 인증샷을 올리는 방탄소년단의 팬들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티켓 추첨 이벤트 참여 인증샷을 올리는 방탄소년단의 팬들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티켓 이벤트는 지난달 19일 열린 일반 예매에 실패하고, 위버스 추첨에서도 탈락한 팬들이 BTS 콘서트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응모횟수가 늘어날수록 당첨 확률도 올라가기 때문에 팬들은 응모 기간 내 최대한 많이 응모하고자 기를 쓸 수밖에 없다.

팬들은 이러한 티켓 지급 방식에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이날 하이브 인사이트에 방문한 문 모 씨(20)는 "부산 콘서트는 포기했다. 중복 응모까지 가능하다 보니 경쟁률도 너무 높고 비용도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결국 티켓팅에 실패한 팬 중에서는 응모에 드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만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송 모 씨(40)도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단체 공연이기 때문에 팬으로서는 꼭 가고 싶을 수밖에 없다"며 "부산시의 비용지원이 없으니 협찬사 행사가 많아졌는데, 국가 행사에 BTS와 아미를 이용하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변에 이번 공연을 보이콧하는 팬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도 고충을 털어놓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위버스에 글을 남긴 A씨는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기 위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고, 편의점을 여러 군데 방문해 자일리톨을 샀다. 응모권을 얻기 위해 야놀자로 숙박 예약도 했다"며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어떡하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허울만 좋은 행사, 팬들 납득시킬 명분 필요"

하이브 본사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하이브 본사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전문가들은 행사 비용을 충당하는 과정에서 팬들의 부담이 가중됐으며, 팬들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협찬사의 티켓 추첨 이벤트로 팬들의 재정적 부담이 커져 차라리 표를 판매하는 게 나을 정도"라며 "무료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허울만 좋은 행사다"고 지적했다.

하 평론가는 "부산시에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 진행하는 행사이기에 기획이나 재정적 부분 등에 있어 부산시 차원에서 책임지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민간 기업에 책임을 모두 전가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즈(cause) 마케팅을 보면 알 수 있듯 소비자들은 동의할만한 명분이 있으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면서 "이번 행사에 BTS가 동원되는 것에 대한 명확한 명분을 제시해야 팬들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김지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