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잇돌로 1년 눌러 기름 뺀 털 사용…"내가 안 하면 전통 끊겨"
유필무류 붓 제작 50여가지 공정…갈필·태모붓 등 100여종 제작

농촌 빈집 마당에 있는 공방은 가건물 형태였다.

공방 출입문 안쪽에 대나무 묶음 등 여러 물건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다시 쪽문을 열자 3∼4평 크기의 '붓 세상'이 열렸다.

크고 작은 붓 300여 자루가 양쪽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고, 각종 붓의 재료와 작업 도구도 눈에 들어왔다.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필장인 유필무(62)씨의 작업 공간이다.

상호는 '석필원'(증평군 도안면 상작길 9-1)으로 돼 있다.

[충북 장인열전] '돈보다 전통'…46년 외고집 붓장이 유필무 필장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붓은 어른 세대라면 자라는 과정에서 한 번쯤은 쥐어 봤을 법한 친숙한 서사 도구이다.

그러나 어떤 붓이 우리 고유의 붓이며, 전통붓은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가 전통붓을 매는 장인인지는 더더욱 모를 일이다.

유씨는 전통붓에서 일가를 이룬 장인이다.

무모해 보일 만큼 정도를 걷는다.

그가 전통 방식으로 모필(짐승의 털로 만든 붓)을 완성하는 데는 1년 이상 걸린다.

모든 털은 기름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를 빼내지 않으면 먹물을 머금는 능력이 떨어지고 붓털이 엉긴다.

그는 이전 세대 장인들이 그랬듯이 1차 손질한 원모를 1년간 다듬잇돌로 눌러놓아 유분을 제거한다.

지금은 그만이 고집하는 방식이다.

빈집 대청마루를 '기름 빼기'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충북 장인열전] '돈보다 전통'…46년 외고집 붓장이 유필무 필장
그는 자신의 붓을 차별화하기 위해 붓대에 불수감 무늬, 포도 무늬 등 문양을 새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붓은 초가리(붓의 털 부분·털 끝 쪽은 '호'), 붓대, 꼭지, 꼭지끈, 각통으로 구성된다.

붓 자체는 단순해 보이지만 유필무류 전통붓은 50여 가지 공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양털붓인 양호필 기준으로 주요 공정은 양털(원모) 고르기, 딱지(털에 붙어 있는 작은 가죽)·솜털 털어내기, 털 펴고 왕겨 태운 재 뿌리기, 털 편 한지 말기, 다듬잇돌로 눌러놓기, 호 쪽으로 털을 정렬하기(아시정모), 가위로 털 자르기, 털 고루 섞기(털타기), 털뿌리 쪽으로 맞추기(완정모), 털 저울에 달고 종이로 감싸기, 물에 털끝 적시기(물끝보기), 초가리 묶기, 녹인 밀랍에 초가리 뿌리 찍기, 인두로 초가리 뿌리 지지기 등이다.

[충북 장인열전] '돈보다 전통'…46년 외고집 붓장이 유필무 필장
붓대를 만들어 붓털, 즉 초가리를 끼우는 것이 후속 작업이다.

가는 대나무를 의미하는 시누대에 쌀겨 섞은 황토 바르기, 시누대 말리기·자르기, 붓대 끝 평평하게 자르기(치죽), 날 선 부분 다듬기(상사치기), 대나무 속 파기, 문양 새기기, 옻칠하기, 찹쌀풀과 생칠을 섞어 붓대 안쪽에 바르기, 붓대에 초가리 끼우기, 우뭇가사리 풀에 붓 적셔 짜내기가 그것이다.

혼자 품을 많이 들여 만든 붓이다 보니 가격도 비쌀 수 밖에 없다.

충주 앙성 출신인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7남매 중 막내인 그는 가정 형평상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13살에 무작정 상경해 '식당 뽀이' 등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가발공장에서도 2∼3년 일했다.

그러다 열 여섯 살 되던 해에 둘째 형수의 가족으로부터 붓공방을 소개받아 '붓장이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 필장은 "어린 마음에 붓 일을 잘 배우면 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충북 장인열전] '돈보다 전통'…46년 외고집 붓장이 유필무 필장
서울에서 3곳의 필방을 거치며 잔뼈가 굵은 그는 1988년 음성군 감곡면으로 내려와 지인 기술자들과 함께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붓을 만들어 공급했다.

불다리미 등 계량된 방법으로 털의 기름을 제거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중 수교로 값싼 중국산 붓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점에서 생존하려면 소비자와 직거래해야 한다는 생각에 1993년 청주 중앙공원 인근에 살림집을 겸한 작은 '유림필방'을 차렸다.

전통붓 제작의 싹을 틔운 곳이다.

그는 가게를 하면서 특히 칡에 시간과 공력을 쏟았다.

전통붓이나 말로만 전해지던 갈필(葛筆·칡붓) 제작에 3∼4년을 매달리다시피 했다.

우연히 접한 오래된 흑백 서책에서 몽당 갈필붓을 본 게 계기가 됐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술의 완성도를 높인 그는 1996년 전승공예대전에 갈필을 출품해 입선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대쪽 같은 인상의 유 필장은 "찌고 말리고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해 갈필을 만든다"며 "나무망치로 5천 번을 두들겨야 초가리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충북 장인열전] '돈보다 전통'…46년 외고집 붓장이 유필무 필장
모필을 기준으로 본격적으로 전통 방식을 적용해 붓을 매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진천군 초평면에 50평짜리 번득한 공방을 지으면서부터다.

띠라는 풀로 만든 초필과 대나무로 만든 죽사필로 충북공예품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모든 재료가 붓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평소 "천 가지 종류의 붓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태아의 머리카락을 이용한 태모붓, 볏짚붓, 달걀껍질붓, 나전칠기붓, 질경이 등 각종 초필, 율무·복숭아씨앗 등을 활용한 관주붓, 황모(족제비꼬리털)붓, 삼대붓(마필), 쇠귓털붓(우이호필)까지 그동안 100여의 붓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는 일은 혹독했다.

생활고가 저절로 따라붙었지만, 극빈의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의 증평 공방도 지인으로부터 무상 임차해 쓰고 있다.

[충북 장인열전] '돈보다 전통'…46년 외고집 붓장이 유필무 필장
청주 문의문화재단지, 마동창작마을을 거쳐 증평에 자리를 잡은 유씨는 언제인가부터 영업은 따로 하지 않고 공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붓을 팔아 생계를 잇고 있다.

그는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봐 주는 사람들과 후원자들 덕분에 굶어 죽지 않는다"며 웃어 보인 뒤 "아무리 세상이 숨 가쁘게 바뀌어도 전통은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전통을 잊거나 놓아 버리면 멸절되고 말 것"이라며 관심을 촉구했다.

유씨는 전수자 육성에 대해서는 "배워도 호구가 안 되니 참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고등학교 2학년생 아들이 대를 이어주기를 희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