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LG전서 개인 최다 이닝·개인 최다 탈삼진
최근 5경기 연속 5이닝 7탈삼진 이상 행진…kt 선발 한 축으로 우뚝

땜질 선발서 에이스급으로…kt 엄상백의 무서운 13K쇼
프로야구에는 '긁혔다'라는 표현이 있다.

투수가 압도적인 모습으로 최고의 투구를 펼쳤을 때 쓰는 말이다.

2022년 9월 1일은 kt wiz 선발 투수 엄상백(26)에게 '긁힌 날'이었다.

엄상백은 이날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BO리그 LG 트윈스와 홈 경기에서 인생 최고의 피칭을 펼쳤다.

7이닝 동안 100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 2사사구 1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2015년 6월 19일 KIA 타이거즈와 원정경기에서 기록했던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8개) 기록을 경신했고, 개인 한 경기 최다 이닝 타이기록도 세웠다.

한 마디로 압도적이었다.

그는 팀 타율 1위를 달리는 LG 강타선을 상대로 1회부터 무서운 면모를 보였다.

리그 최고의 테이블 세터로 꼽히는 홍창기, 박해민, 김현수를 연속 3타자 삼진 처리했다.

엄상백은 세 타자에게 모두 날카롭게 휘는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았다.

스트라이크 존 아래 경계선에 걸리는 직구와 슬라이더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구분하기 어려운 두 구종에 LG 타자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4회 선두타자 김현수에겐 몸쪽 낮은 시속 149㎞ 직구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 삼진 처리했다.

김현수는 '완전히 당했다'라는 느낌을 받은 듯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엄상백은 위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후속 타자 채은성에게 좌측 담장 상단을 맞히는 좌중간 3루타를 허용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오지환을 헛스윙 삼진, 문보경을 내야 뜬 공으로 잡았다.

땜질 선발서 에이스급으로…kt 엄상백의 무서운 13K쇼
엄상백은 체력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6회 2사 1루 위기 채은성을 상대로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에서 던진 직구는 시속 150㎞를 찍었다.

채은성은 이 공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87구를 던진 엄상백은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오지환을 직구로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 1사 2루 위기에서 로벨 가르시아와 문성주를 헛스윙 삼진과 내야 땅볼로 잡아내며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

인생 최고의 투구를 펼친 엄상백은 마지막에 웃지 못했다.

1-0 승리를 눈앞에 둔 9회초 2사에서 마무리 투수 김재윤이 3점을 내주며 엄상백의 승리가 그대로 지워졌다.

중계카메라는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엄상백을 향했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비록 승리 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엄상백은 박수와 격려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는 올 시즌 팀 내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kt는 선발 한 자리가 빌 때마다 불펜에 있던 엄상백을 끌어 썼다.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가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도 그랬고, 배제성이 컨디션 난조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졌을 때도 그랬다.

빈자리가 채워지면 엄상백은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

대체 외국인 투수 윌리엄 벤자민이 합류했을 때나 배제성이 컨디션을 회복했을 때 엄상백은 다시 불펜 역할을 맡았다.

일종의 '땜질 선발'이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 루틴이 무너지고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는 군말 없이 주어진 역할을 다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 감독은 지난달 기존 선발 배제성이 복귀한 뒤 '엄상백은 다시 불펜으로 이동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이제는 미안해서 못 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엄상백은 본격적으로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은 지난달부터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5경기에선 모두 5이닝 이상을 책임졌고, 매 경기 7개 이상의 삼진을 잡았다.

이 기간에 잡은 삼진은 총 41개다.

엄상백의 탈삼진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그는 꾸준히 선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도 리그 최다 탈삼진 15위(114개)를 달리고 있다.

올 시즌 11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로 범위를 확대하면, 9이닝당 탈삼진 부문 3위(9.24개)의 기록을 쓰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