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백신 이기주의' 등으로 분열 낳아…"연대 중요성 어느 때보다 커져"
기존 단편적 지원에서 '총체적·포괄적 지원'으로 진화 단계
지역서 영향력 큰 신흥공여국 역할 부상…"개발협력 모델 재편해야"

[※ 편집자 주 = 3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국제개발협력(ODA) 지형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백신 이기주의' 등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무너진 국가 간 신뢰를 회복하고, 연대와 통합을 강화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팬데믹 이후 ODA 흐름과 한국의 역할, 지구촌 현안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 등을 진단하는 기획 기사를 31일부터 9월 2일까지 3회에 걸쳐 송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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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개발협력] ①"'연대와 통합'으로 신뢰 복구해야"
3년 가까이 지구촌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공적개발원조를 포함하는 국제개발협력(ODA) 지형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일단 코로나19 팬데믹은 신뢰와 연대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개발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자 백신과 마스크, 진단키트 생산과 공급 등 일련의 과정에서 ODA 공여국들은 극심한 '자국 우선주의'를 드러냈다.

ODA 공여국인 선진국들은 자국의 백신과 의료품 챙기기에만 바빴을 뿐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타격이 더욱 큰 개발도상국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다.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원 지속가능발전센터장인 김성규 국제개발협력학회장은 "공여국들은 코로나19라는 초국가적 감염병에 글로벌 파트너십을 발휘해 대응하기보다는 자국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경향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로 인해 에볼라, 콜레라 등 개발도상국 내 만연한 다른 감염병 등의 보건 문제는 소외되고, 국가 간 갈등 구조도 커졌다"며 "이를 극복하고 신뢰와 연대를 회복하는 시급한 과제를 던져줬다"고 진단했다.

[포스트 코로나 개발협력] ①"'연대와 통합'으로 신뢰 복구해야"
유엔이 인류의 장기적인 번영과 공존을 위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등도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유엔과 ODA 공여국, 수혜국 등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인류 공동의 17개 목표(빈곤퇴치, 기아 종식, 성평등 등) 달성을 위해 파트너십 등을 통해 상호 협력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 무역과 교류의 축소, 원조 감소 등은 그러한 분위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유엔이 발간한 '2022년 SDGs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 빈곤 인구가 최대 9천300만 명 증가해 4년 이상의 빈곤 감소 성과가 후퇴했다.

분쟁 확대와 기후변화, 증가하는 불평등과 맞물리며 식량과 기아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SDGs의 달성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개발협력] ①"'연대와 통합'으로 신뢰 복구해야"
다만 코로나19 팬데믹이 ODA 지형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쳤다는 진단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김성규 회장은 코로나19가 가져다준 긍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디지털화'를 꼽았다.

그는 "2년 반 넘게 국가 간 사람의 이동을 멈추게 한 코로나19는 원격 화상회의 등을 일상화해 지구촌을 '디지털화', '디지털 고도화'라는 변화로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디지털화는 현지에 직접 가지 않고도 화상회의 등으로 현안을 논의하고 개선책 등을 모색할 수 있게 해 ODA의 진전과 다각화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발협력에 대한 접근에 있어 기존의 단편적 접근이 아닌, '포괄적·통합적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이다.

기존 ODA의 주된 초점이 개도국의 경제 개발과 복지 증진에 맞춰졌다면, 이제는 보건과 문화, 정치, 종교 등을 통합해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기존 선진국이 개도국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전통적 방식이 코로나19 팬데믹 때 빈곤의 심화와 개발 재원 감소를 불러왔다는 문제의식의 표출이기도 하다.

이에 모든 형태의 지속 가능한 개발 재원을 총동원해 다양한 형태의 개발협력에 나서자는 '총체적 지속개발 공적지원'(TOSSD·Total Official Support for 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이다.

곽재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다양한 활동들이 TOSSD 개념의 적용 대상이 된다"며 "예컨대 개도국에 대한 중국의 백신 지원, 쿠바의 의료인 파견 등의 활동은 개도국의 '남남협력'이므로 기존 ODA 통계에 잡힐 수는 없지만, TOSSD 개념에는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포스트 코로나 개발협력] ①"'연대와 통합'으로 신뢰 복구해야"
이러한 관점에서 일방적 공여자와 수혜자로 나뉘는 이분법적인 ODA 시대는 저물어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감염병 백신과 같은 글로벌 공공재의 공평한 공급,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도전 과제에 대한 공동 대응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발협력의 문제가 더는 가난한 몇몇 국가의 문제가 아닌, 인류 공동의 보편적인 문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원조를 받던 국가들이 자신들의 역량과 발전 경험을 다른 협력국과 공유하고, 나아가 지역과 글로벌 번영에 기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십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신흥 공여국'의 출현이다.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태국, 카자흐스탄, 이집트, 아제르바이잔 등 지역 내에서 영향력이 큰 신흥 공여국은 팬데믹 상황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손혁상 코이카 이사장은 "신흥 공여국은 지역의 수요를 고려한 다층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며 "지역별로 특화한 협력 네트워크는 ODA의 지평을 확대하고, 지속가능한 개발협력 생태계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들 신흥 공여국의 더욱 폭넓은 참여를 위해 서구 전통 공여국 중심의 ODA 체계와 규범이 보다 포용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손 이사장은 덧붙였다.

김성규 회장은 "기존 ODA 모델과 신흥 공여국의 유사성과 차이점 등을 분석해 이를 기반으로 한 포용적인 협력 모델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신흥 공여국의 지식과 전문성을 융합한 통합적 접근 방법을 제안했다.

[포스트 코로나 개발협력] ①"'연대와 통합'으로 신뢰 복구해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