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서 2022 교육과정 개정 추진…교육부 "누락된 부분 검토·보완"
정권 교체 때마다 교과서 이념 논쟁…확정 발표시까지 논란일 듯
2022 교육과정 한국사 시안에 '6·25 남침' '자유' 등 표현 빠져(종합)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 시안에서 6.25 전쟁 등 근현대사 서술과 관련해 기존 교육과정에 있었던 여러 표현이 빠져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31일 교육부가 공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따르면 개항부터 현대까지를 주로 다루는 고등학교 한국사 공통 교육과정 시안에서 내용 체계와 성취기준 등에 6·25 전쟁과 관련해 '남침'이라는 표현이 빠져있다.

시안은 '남침'이라는 표현 없이 '6·25전쟁과 남북 분단의 고착화' 등으로 6·25 전쟁을 서술하고 있다.

2015 교육과정이 '북한 정권의 전면적 남침으로 발발한 6·25 전쟁의 전개 과정'으로, 2018년 개정판이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의 전개 과정과 피해 상황'으로 서술한 것과 달라졌다.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민주화 관련 내용을 서술한 부분에서도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빠졌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관련한 내용 요소 서술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없이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또 성취기준 해설에는 '4·19 혁명에서 6월 민주 항쟁에 이르는 과정을 독재 정권으로 인한 민주주의 시련과 국민적 저항에 기반한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라고 표현했다.

2015 교육과정과 2018 개정판에서 '8·15 광복'이라고 서술한 부분은 이번 시안에서는 8·15 없이 '광복'이라고만 표현됐다.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도 2015 교육과정에는 '신자유주의 정책', 2018년 개정판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 서술했던 부분이 이번 시안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사회와 경제, 문화 등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탐구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 2015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수립'이라도 돼있던 표현은 2018년 개정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었는데, 이번 교육과정 시안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유지됐다.

교육부는 이번에 공개된 시안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서 다음달 13일까지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에 필요한 부분을 보완해 올해 말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수립' 등은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면 한국사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어떻게 서술되는지를 두고 거센 이념논쟁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박근혜 정부 때 마련된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일부 개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후 다시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해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지난해 11월 공개했으며, 그에 따라 이번에 과목별 시안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경우, '자유'라는 표현을 넣어야 한다는 쪽에서는 '민주주의'만 쓰이면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자유'를 빼야 한다는 쪽은 '자유민주주의'가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표현이므로 '민주주의'가 더 중립적인 개념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수립' 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도 대한민국 건국 시점과 관련해 보수, 진보 진영이 계속 논쟁을 벌여왔던 사안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그렇게 되면 이전의 독립운동 역사와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 교육과정을 두고 이념 논쟁이 되풀이된다는 지적에 대해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최대한 이전 교육과정 내용들의 범위를 수용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시안에서 누락된 부분에 대해서는 검토 보완해 나가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오 실장은 "정책연구진의 연구 자율성을 보장한다"면서도 "연구진이 국민소통채널을 통해 제기되는 국민 의견이나 언론에서 질의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연구진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교육과정 연구진의 연구에 직접 개입하거나 방향을 정해두면 연구진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또 다른 논란에 부딪힐 수 있다.

과거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이 수십년간 되풀이되는 가운데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다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끝에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교육현장, 정치권, 사회 각계에서 반대에 직면했고 여론조작, 집필진 명단과 편찬기준 비공개 등으로 추진 과정 내내 논란을 일으키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추진 동력을 잃고 좌초했다.

교육부는 결국 2016년 12월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불과 석 달 앞두고 이 계획을 철회했다.

한편, 이번 교육과정 시안에 노동교육이나 생태교육 등 진보진영이 요구해온 관련 내용이 삭제됐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해 발표된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에 있었던 '생태전환교육'과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 항목이 이번에 발표된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삭제됐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이날 논평을 내 "정권이 바뀌었다고 교육목표의 핵심 내용이 바뀐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교육과정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이 의미 있는 과정이 되려면 슬그머니 삭제한 '노동교육'과 '생태전환교육'을 총론에 다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말 최종 확정·고시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17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24년부터 초교 1∼2학년, 현재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25년 중·고교에 연차 적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