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비상상황' 요건 엄격 해석…"전국위 비대위원장 결의, 당헌·헌법 위반"

이준석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제동을 건 법원은 당이 비대위를 둘 정도의 비상상황은 아니라며 "일부 최고위원들이 지도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상황을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당 대표가 자신을 자동 해임하는 당의 비대위 체제 전환에 반발하며 사법부 판단을 구한 초유의 상황에서 법원은 정당의 '비상상황' 기준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이준석 손 들어준 법원…"국민의힘, 비상상황 아니다"
국민의힘 당헌 96조 1항은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의 해소를 위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전 대표 측은 해당 규정에 따라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에 대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는 당 사무처에서도 궐위가 아니라 '사고'로 결론지었고, 사퇴를 선언했던 배현진·윤영석 등 최고위원들이 그대로 8월 2일 표결에 참여했으므로 최고위의 기능 또한 상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당헌 27조 3항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궐위 시에는 30일 이내 전국위에서 후임자를 선출하게 돼 있으므로 결원을 보충하면 될 일이지, 당의 비상상황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 전 대표 측 입장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측에서는 당 대표 2년 임기 중 6개월 정지는 '궐위'에 준하는 상황으로 봐야 하고, 최고위도 구성원 9명 중 일찍 사퇴한 김재원 최고위원 외에도 배현진·조수진·윤영석·정미경 최고위원 등이 사퇴해 '4인 이하'가 됐으므로 기능 상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선출직 최고위원이 거의 동시에 여러 명 사퇴했다면 후임자를 선출해 보충할지, '비상상황'으로 보아 비대위를 둘 것인지는 정당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며 '정당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이준석 손 들어준 법원…"국민의힘, 비상상황 아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법원은 이 전 대표 측 손을 들어줬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26일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사실상 전부 인용하며 "전국위 의결 중 비대위원장 결의 부분은 당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민주적인 내부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당원의 총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기관 및 집행기관을 가져야 한다는 정당법에도 위반되므로 무효"라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재판부는 당헌 96조 '비상상황'을 "당 대표 또는 최고위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당헌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위 기능을 회복할 수 없거나 회복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비상상황에 준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당 대표 궐위나 최고위원회의 기능상실과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일이 발생해 당의 의사결정 등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당의 의사결정에 무리가 없고 ▲ 8월 2일자 최고위 의결이 이뤄지는 등 최고위원회 기능이 유지됐으며 ▲ 당헌에 따라 전국위에서 최고위원을 선출해 기능을 회복할 수 있으므로 비대위 설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8월 5일 상임전국위에서 당의 현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보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비상상황이 맞는다고 주장했으나, 이 또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임전국위는 최고위 기능 상실이나 비상상황의 의미에 대한 정의나 설명 없이 당 대표 사고와 최고위원 사퇴가 비상상황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했는데, 이는 해석이 아닌 적용에 관한 의견에 불과하고 그 전제에 해당하는 해석이 없어 효력에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상임전국위가 당헌 96조 해석뿐 아니라 비대위 설치까지 결정한 결과가 되었는데 당헌에 비대위 설치의 주체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100인 이내로 구성되는 상임전국위에 비대위 설치 결정 권한이 없음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재판부는 정당의 내부 의사결정이라도 정당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는지 여부는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등을 따라 "정당의 활동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고 정당은 정치적 조직체인 탓에 그 내부조직에서 형성되는 과두적, 권위주의적 지배경영을 배제해 민주적 내부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규제가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