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대체의사소통(AAC) 장치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송민혜(가명·17) 양의 물음에 기자가 잠시 망설이자 송 양의 어머니(45)는 "저희는 '우영우' 봐요.
민혜도 가끔 같이 보죠"라며 먼저 답을 건넸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 우영우가 대형 로펌에 입사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려낸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뇌병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다소 먼 얘기다.
민혜 양의 어머니는 "현실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가 우영우 변호사처럼 스스로 표현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며 "자유롭게 밥도 혼자 먹고 움직이는 (드라마 속) 모습을 보면 뇌병변 장애아 엄마들은 '저 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고 했다.
뇌병변 장애는 뇌성마비,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등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생긴 신체·정신적 장애로, 보행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준다.
이런 뇌병변 장애의 특성상 민혜 양 어머니도 재활치료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딸과 붙어있을 수밖에 없다.
지적·자폐성 장애로 대표되는 발달장애와 비교하면 지체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움직일 때마다 현실의 '턱'이 와닿는 셈이다.
또래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던 송 양은 다섯 살이던 2010년, 뇌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서서히 좁아지는 희귀질환인 '모야모야병'이 발병하면서 장애를 갖게 됐다.
병은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좌측 뇌혈관 수술을 받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목을 가누지 못하게 된 데 이어 우측 뇌가 부어오르며 뇌경색이 왔다.
송 양의 어머니는 "나도 그랬지만, 후천적으로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된 부모들과 얘기해보면 아이가 아프기 전에 머무르는 것 같다"면서도 "아이가 다시 걷고 말하는 걸 보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송 양은 올해 3월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희귀 난치 어린이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보조기구와 재활 치료비를 지원받았다.
수동 휠체어를 타던 때는 편마비가 온 왼쪽 몸이 아래로 계속 쳐져 휠체어에 손이나 팔이 끼여 다치는 일이 많았다.
재단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다행이라면서도 지역자치단체나 지자체 내 특정 구별로 장애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 편차가 크다는 점이 아쉽다고 송 양 어머니는 털어놨다.
송 양 어머니는 "특정 지역 거주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 많아 속상했다"며 "여러 장애인 가구에 좀 더 폭넓은 정부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송 양의 AAC 장치에서는 "나는 초록색이 좋아요"라는 문장이 몇 차례나 반복해서 이어졌다.
편마비가 오지 않은 오른손으로 버튼을 조작하는 훈련을 받고 있지만,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이런 일이 잦다.
또 기계에 저장된 말만 할 수 있다 보니 상대가 묻는 말에 적절한 답변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딸 민혜가 글씨를 쓸 수 있게 됐으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전할 수 있게 됐으면 해요.
언젠가 '엄마 사랑해요'라고 쓰인 편지를 받아볼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