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비상상황' 자초한 친윤
“비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중지를 모으고자….”

지난 1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안건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권 원내대표는 “당이 비상 상황에 직면했다”며 ‘비상 상황’을 비대위 명분으로 내세웠다. 최고위원 과반 사의(9명 중 5명)에 따른 ‘최고위 기능 상실’을 비상 상황의 이유로 댔다. 의총에 온 의원 89명 중 김웅 의원을 뺀 88명이 여기에 동의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일 당은 비상이 아닌 평상시처럼 돌아갔다. 지도부는 최고위원회를 열고 비대위 전환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상임위 소집을 의결했다. 재적 인원 7명 중 과반인 4명이 참석했다. 이 중 3명은 사퇴를 선언했던 권 원내대표와 배현진·윤영석 최고위원이었다. 이들은 ‘사퇴서가 접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고위에 나왔다. 기능이 멀쩡히 살아 있는 최고위가 기능 상실을 전제로 한 비대위 체제를 결정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했다. 정치권에선 “비상 상황을 만들기 위한 최고위원 사퇴”라는 조롱이 나왔다.

지지율만 보면 여권은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8주 연속 하락세다. 여기엔 ‘당내 세력 다툼’ 탓도 크다. 정부 출범 후 여권 기사에는 줄곧 ‘내홍’ ‘갈등’ 등과 같은 단어가 나왔다. 정진석 의원과 이준석 대표 간 ‘SNS 설전’부터 안철수 의원의 최고위원 추천을 둘러싼 내홍, 이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이 주고받은 ‘고성 갈등’까지.

그런데 당권 다툼의 한복판에 있던 이들은 그대로다. 비상 상황을 선언해놓고 정작 서열 2위이자 ‘대통령 문자 유출 사태’에 1차 책임이 있는 권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비대위가 차기 전당대회를 위한 체제인 만큼 비대위 임기와 전당대회 시기를 두고 당권 주자 간 견해차가 크다. 비대위 체제가 되면 이 대표의 복귀가 봉쇄되는 만큼 법적 공방도 우려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나라당 시절인 2010년부터 지금까지 총 여덟 번 비대위를 꾸렸다. 2012년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비대위 체제 빼고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 위기의 원인을 진단해 메스를 대려고 하면 여지없이 기득권 세력에 막혔다. 이번 비대위가 리더십 회복이 아닌 권력 장악을 위한 체제라면 ‘비상 상황’은 유지될 뿐이다. 특정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간판만 비대위로 바꾼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