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록스타 발굴·지원…1994년 워너브러더스 CEO 사직
지미 헨드릭스와 딥 퍼플,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 록 뮤지션들과 계약하고 음반을 제작한 음반 산업계의 거물 모 오스틴이 별세했다.

향년 95세.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오스틴이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지난달 31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오스틴은 196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록 음악의 황금기를 건설한 중심인물로 평가된다.

미국의 메이저 음반사인 워너브러더스의 최고경영자(CEO)였던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헨드릭스를 비롯해 블랙 새버스, 그레이트풀 데드 등 전설적인 록 뮤지션과 계약했다.

또한 섹스 피스톨스와 R.E.M, 그린데이 등 록 음악의 흐름을 바꾼 뮤지션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스타성을 꿰뚫어 보는 그의 능력이 가장 잘 나타난 계약으로는 1978년 프린스와의 계약이 꼽힌다.

그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프린스와 계약하기 위해 당시 무명이었던 그에게 3장의 앨범을 내주겠다고 보장한 것 이외에도 음악 내용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다.

결국 프린스는 워너브러더스와 계약했고, 여섯 번째 앨범 퍼플 레인은 전세계에서 2천500만 장 이상 팔린 대 히트작이 됐다.

1927년 뉴욕 브루클린의 러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틴은 록 음악의 황금기를 이끈 후견인으로 불리지만, 첫 출발은 재즈였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로스쿨을 중퇴하고 재즈의 명문 레이블 '버브'의 전신 '클레프'의 녹음실에 취직한 그는 당시 슈퍼스타였던 프랭크 시내트라와 친분을 쌓았다.

시내트라는 1960년 자신의 레코드 회사인 '리프라이즈'를 설립하면서 오스틴을 부사장으로 임명한 뒤 "버브 같은 재즈 레코드회사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당시 유행은 로큰롤이었지만, 시내트라는 로큰롤 뮤지션과의 계약은 금지했다.

이에 오스틴은 "로큰롤을 무시하면 회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시내트라를 설득한 뒤 영국 밴드 킹크스와 계약,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오스틴은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큰 존경을 받았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스 연주자 플리는 오스틴이 1994년 워너브러더스 CEO 자리에서 물러나자 "당신은 레코드 회사 사람 중 내 눈을 바라본 첫 번째 사람"이라는 가사가 담긴 미발표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오스틴은 지난 200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