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150여명 모여 이틀째 집회…"독단적 발표, 급추진 이유를 모르겠다"
교육계·교육청 사전협의無…교육부 내부검토·조율도 미흡 지적

정부가 추진하는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계 사전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이 없어 추진 절차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사전 예고 없이 학제개편안이 교육부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된 배경을 둘러싼 논란도 고개를 들고 있다.

'만5세 입학' 반대 서명 20만명·릴레이집회…"졸속·일방 추진"(종합)
◇ 1인 시위·릴레이 집회…반대서명에 20만여명 참여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범국민연대)는 2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낮추는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이틀째 이어갔다.

범국민연대는 5일까지 '릴레이 집회'를 계속할 계획이다.

범국민연대는 "교육부와 정부의 독단적인 만 5세 초등 취학 학제개편 발표에 숨이 턱턱 막힌다"며 "유아기 발달에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150여명이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참여해 "유아 교육에 무지한 교육부는 각성하라", "유아 발달 무시하는 초등 취학 철회하라", "교육 주체 무시하는 교육부는 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달 30부터 인터넷 맘카페 등을 통해 공유되고 있는 범국민연대의 만 5세 취학 철회 촉구 서명운동에는 이날 오후 3시까지 20만여 명이 참여했다.

윤지혜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유아의 주의 집중 시간은 최대 10∼20분이어서 초등학교 수업 시간인 40분은 무리"라며 "유아들이 학업 스트레스에 1년 일찍 노출되게 하는 것은 발달에 부정적이며, 유아의 놀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미애 한국유아교육협회 부회장은 "100세 시대를 잘 살아가려면 창의와 인성 및 자기유능감이 필요한데, 그 토대가 마련되는 유아기가 1년 단축될 위기에 처했다"며 "교육부의 발상은 교육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전날 이 집회를 주관한 데 이어 이날 다시 논평을 내 "초등 조기취학 안은 이미 수명을 다한 담론"이라고 재차 지적했다.

이 단체는 "유아들의 인지·정서발달 특성상 부적절하고,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시기를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

지금 시기에 갑작스레 등장한 까닭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또한 이날부터 대통령실 앞에서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을 시작으로 오는 12일까지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전교조 17개 시도지부도 시도교육청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아 발달단계 부적합, 대입·취업경쟁 심화, 사교육 조장, 돌봄 공백 등 우려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정책 실행시 만 5세 1년 과정이 사라지게 될 유아교육 교원들과 관련학계의 반발이 특히 거세다.

한국영유아교육과정학회는 이날 낸 성명에서 "유아교육을 초등학교 준비교육으로 보고, 사교육을 증가시켜 학부모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는 근시안적 정책"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이 단체는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교사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음에도 이를 시도하지 않고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미봉책으로 이(교육격차)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5세 입학' 반대 서명 20만명·릴레이집회…"졸속·일방 추진"(종합)
◇ "추진절차 완전히 잘못돼"…교육부 내부 조율도 부족했나
교육계 안팎에서는 이번 정책 추진이 무엇보다 절차상으로 잘못된 '졸속행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교육에 장기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칠 학제개편 방안을 시도교육청은 물론이고 교원, 학부모, 교육전문가들과 논의하는 절차 없이 추진 발표부터 하고 나서 방법을 찾아 나가겠다고 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76년 된 학제 개편을 의견수렴도 없이 추진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독단"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식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이날 1인 시위에 나서면서 "이 중차대한 일을 사회적 합의는커녕 토론 한번 없이, 논란 속 취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교육부 장관이 내놓을 정책이 결코 아니다"라며 "윤 대통령은 전국민적 반발 여론을 수용해 이를 즉각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도 "교육 현장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학제 개편안을 교원단체나 시도교육감협의회와도 상의 없이 발표한단 말이냐"라며 공론화 과정 부재를 비판했다.

이번 학제개편안은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기까지 교육부 내부에서도 충분한 검토와 조율을 거치지 않고 박 부총리가 직접 추진한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1일 유아교육단체 대표들과 함께 박 부총리를 면담한 문미옥 한국유아교육대표자연대 의장은 CBS 라디오 '한판승부'와 한 인터뷰에서 교육부와 사전에 상의하거나 자문요청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교육부에 있는 유아교육정책과에서도 아무런 영향이나 의견을 제시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학교정책과에서 학제 개편을 연구하면서 5세 초등 입학을 장관께서 직접 결정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도 "박 부총리가 임명 전부터 학제개편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며 "교육부 내부에서는 신중론이 있었지만 부총리가 취임 후 이를 본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