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는 주워온 애인데…" 막장드라마 수준의 4000년 전 편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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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회
!["걔는 주워온 애인데…" 막장드라마 수준의 4000년 전 편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207/01.30736303.1.jpg)
“절대 안 된다. 오직 내 핏줄을 물려받은 손자만 우리 가문을 이을 수 있어.”
흔한 아침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이 대화는 사실 2569년 전 바빌로니아(현재 이라크·쿠웨이트·시리아 지역)의 어느 집에서 실제 오간 말들을 조금 각색한 것입니다.
'애 딸린' 여성과 결혼한 벨-카찌르는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호적에 올리고 싶었지요. 아마도 그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로맨티스트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나디누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생판 남의 자식이 우리 가문 재산을 가져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나디누는 이렇게 외쳤겠죠.
어느덧 나디누의 100세손까지 흙으로 돌아가고도 충분할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대화 내용을 생생하게 압니다. 이들 중 누군가가 쐐기문자로 점토판에 적어 뒀기 때문이죠. 유산 분쟁에 대비한 기록일 거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남아있지 않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대화를 기록한 점토판이 오랜 세월을 넘어 1886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이 됐고, 지금 한국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니까요. 그리고 다른 재미있는 석판들도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4000년 전 구구단 외웠던 메소포타미아 공무원
!["걔는 주워온 애인데…" 막장드라마 수준의 4000년 전 편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207/01.30734556.1.jpg)
그런데 전시를 보다 보면 그 먼 곳의 옛날 사람들에게 친한 척을 하고 싶어집니다. "사람 사는건 어디나 똑같네"란 생각이 들어서죠. 그도 그럴 것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도시를 만들고 직업을 분화시켜 '사람 사는 꼴'을 처음으로 만든 곳이거든요.
세세한 생활은 많이 다르겠지만 세금을 내고, 외국과 거래하고, 빚을 갚고, 소송을 걸어 판결을 받는 등 '사회 생활'의 본질은 여기도 똑같았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30만년에 이르는 인류의 '까막눈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를 발명했거든요.
문자의 발명은 도시를 만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양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는 수많은 '최초'가 있지만, '최초'라는 단어를 딱 두 번만 써야 한다면 바로 도시와 문자”라고 했습니다. 도시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 이전과 크게 바뀌었고, 문자가 생기면서 역사가 크게 도약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모여 살면서 도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먹을 게 충분해야 합니다. 전시 시작부에 나와 있는 4500년 전(기원전 약 2600~2350년) 만들어진 수로 보수공사 관련 문서에서 그 비결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 쓸 수 있게 되면서 안정적으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면서 인구가 늘고, 식량 생산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어지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분업과 전문화가 시작됐고, 서로 생산물을 바꾸는 물물교환도 생겨났습니다. 자급자족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발전을 이룬 거죠.

장기 사업 대출 받고, 명품 좋아하고…사람 사는 거 똑같네

경제활동은 지금 못지 않게 복잡하고 고도화돼 있었습니다. 예컨대 전시에 나온 '채무 변제 증서와 보관함'에는 장기 사업 대출을 받은 사업가가 채권자의 아들에게 돈 대신 물건으로 빚을 갚는 내용이 적혀 있지요. 증서에는 순은 9와 3분의 2마나(약 6.2kg) 상당의 물건을 줬다고 돼 있네요. 앗슈르단과 임디-일룸 등 공증을 선 4명의 이름도 적혀 있습니다.
4000년 전 앗시리아 왕국의 상인들은 옆나라인 히타이트 제국을 오가며 장사를 했고, 이들은 히타이트 제국의 일종의 '상업 특구' 격인 카룸 카네쉬에 모여 살았습니다. 이들이 남긴 상업 문서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3800년 전쯤(기원전 1836년) 이곳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점토판을 구우면 보존성이 확 올라가는데요, 역사가들에게야 고마운 일이지만 당시 상인들은 그야말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겠죠.



4000년 전 사람들, 요즘 애들만큼 철없었네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세계 각지 박물관에는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남긴 별별 얘기가 다 남아 있습니다. “고품질 구리를 준대놓고 저질 물건을 준 사기꾼을 규탄한다” 등의 '공문서'는 수도 없이 많고요. “달마다 24일은 학교에 가야 한다. 지겨운 학교.” “아들아, 빈둥대지 말고 학교에 가라. 제발 철 좀 들어라.”“동생아, 버터랑 양 한 마리를 보낼테니 기록 보관소에 가서 나한테 걸린 소송 내용들을 좀 알아보고 연락해 줘. 그놈의 황금 얘기는 왜 자꾸 나오는 거야?” 등 '카톡 대화'급의 일상적인 대화들도 남아 있죠.
4000년 전쯤 쓰여진 이 편지는 막장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든 수준입니다. "엄마, 날이 갈수록 여기 애들 옷은 좋아져요. 그런데 내 옷은 날이 갈수록 초라해지게 방치하네요. 사실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집 양모는 아무렇게나 쓰고, 내 옷은 거지같이 만들어주시고. 나한테 옷 한벌도 안해주는 동안 우리 아버지 조수 아다드-잇디남네 아들은 벌써 옷 두벌을 새로 입었네요. 걔는 주워온 앤데도 엄마 사랑을 받아요. 나는 친아들인데도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데!" (아들 잇딘-신이 어머니 지누에게 보낸 편지)
아들 아다드-아붐이 아버지 우잘룸에게 보낸 편지는 한술 더 뜨네요. "만일 아빠가 나한테 아빠 노릇 하고 싶다면, 나한테 머리에 두를 고급 구슬 목걸이 하나 사 줘요. 배송은 우리집 심부름꾼한테 맡기고. 없으면 땅이라도 파서 보내줘요. 아빠가 진짜 친아빠인지 한번 보겠어요. 값이 얼마인지도 같이 써서 보내주고요. 만약 보내준게 맘에 안들면 반송해버릴거에요! 그리고 전에 말했던 망토도 같이 보내줘요."
1967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출판된 논문 'Letters from Mesopotamia'(메소포타미아에서 온 편지)에서 이런 편지들을 실컷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