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희열, 이적, 이무진 /사진=한경DB
가수 유희열, 이적, 이무진 /사진=한경DB
가요계가 표절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당초 표절 의혹의 대상이 된 곡 및 아티스트 외에도 연쇄적으로 유사성 지적이 일면서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다수의 곡이 네티즌들의 검증대에 오르며 의혹 제기, 부인, 반감 여론의 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하지만 대부분 이렇다 할 명확한 결론 없이 부유하고 있다. 가요계 표절 의혹,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 표절 의혹, 왜 정답 없이 떠돌까?

이번 표절 의혹은 서울대 출신 작곡가이자 가수 토이로 큰 인기를 끌었던 유희열의 곡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영화 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Aqua)'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두 곡은 초반부 테마가 상당히 닮아있는데, 코드 진행과 멜로디 등이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유희열은 원작자 사카모토 류이치 측에 우선으로 연락을 취해 "표절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얻었다. 표절 문제는 시시비비를 판가름할 '정량적 기준'이 없어 원작자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2소절(8마디)이 같으면 표절'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1990년대 후반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해당 기준법은 '그럼 8마디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이른바 '편법'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

결국 '8마디 기준'마저 사라지면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소송만이 유일한 방법이 됐다. 즉, 표절 피해를 본 작곡가가 직접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표절이냐, 아니냐를 법적으로 가려야 하는 것이다.

법원은 원곡의 창의성, 곡의 상업적 이용 및 실질적 유사성 등을 따지는데, 다소 추상적인 기준인 탓에 쉽게 결론을 예측하기 어렵다.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다는 점도 법적 판단을 피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이에 시비가 붙더라도 대부분 원작자와 합의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 "표절 아냐" 입장에도 도미노 의혹, 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카모토 류이치는 유희열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작자와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표절 시비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의심의 눈길이 다른 곡으로 옮겨붙으며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유희열의 입장은 "표절이 아니다"였다. 그는 "지금 제기되는 표절 의혹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올라오는 상당수의 의혹은 각자의 견해이고 해석일 순 있으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든 부분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이적, 이무진까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이들 또한 전부 "대응할 가치가 없다", "매우 유감"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현재도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다양한 곡들의 유사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해외의 여러 음악을 접할 루트가 다양해지고, 온라인을 통해 이를 공유하기 쉬운 환경이 되면서 대중의 검증 폭 또한 넓어졌다. 특히 지금은 음악 팬들 역시 한껏 민감해진 상태라 어느 정도의 유사한 흐름만 포착돼도 표절 의혹으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비슷하게 들리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의혹을 제기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반대로 이런 대중의 반응을 과도한 것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가수 및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어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 "창작자들, 자기 검열에 더 엄격해야"

유사성을 무조건적인 표절로 보아선 안 된다는 주장에는 ▲1990년대를 포함해 그간 가요계엔 레퍼런스가 만연했고 이에 관대했으며 ▲모든 음악은 기존 창작물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가 깔린다.

하지만 지금의 여론은 이러한 주장이 다수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표절을 판단할 기준이 없는 만큼, 대중은 직접 들리는 유사성을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 내 귀에 비슷하게 들리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으니 가수의 입장은 곧 반감으로 이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신의 음악에만 매몰되어 있는 게 아닌 이상, 창작자는 필연적으로 다른 창작자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레퍼런스를 통한 발전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거다. 여러 곡이 줄줄이 의혹 대상이 됐다면 창작 활동을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레퍼런스의 기준을 정하는 건 '그 부분만 피하면 되니까'라는 식의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다. 결국 정답이 없으니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거다. 창작자들은 과거보다 철저한 자기 검열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과도한 추측으로 인해 창작 활동이 위축되어선 안 될 것이란 우려도 함께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