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연극 '터칭 더 보이드(Touching the Void)'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터칭 더 보이드'는 1985년 아무도 등반하지 않은 페루 안데스 산맥 시울라 그란데의 서쪽 빙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 영국인 산악가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의 생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동명의 회고록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잘 알려져 있으며, 연극은 2018년 영국에서 초연됐다.
한국 초연인 이번 공연의 연출은 김동연이 맡았다. 김동연은 그간 연극 '킹스 스피치', '알 앤 제이', 뮤지컬 '데스노트', '젠틀맨스 가이드' 등의 작품에 참여했던 스타 연출가다.
김 연출은 "도전이 많은 작품이었는데, 와닿는 의미와 대사들이 많아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이 이야기를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에 닿으려는 의지가 우리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모든 관객들이 같은 의미를 가질 순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큰 에너지를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가파른 설산은 하얀 경사면으로 표현됐고, 사이 사이 의자의 등받이 부분을 노출해 암벽 타는 모습을 구현해냈다. 경사면 사이에는 큰 홈이 있어 조난 당했을 때의 거리감과 '단절'을 체감케 한다.
김 연출은 "무대 디자인을 수십번 고쳤다. 상상 속에서는 배우들이 천장에도 매달려있고, 객석을 기어다니기도 했는데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무대 중간에 상처처럼 파여 있는 홈이 있다. 조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처럼 위태로워보였으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운드에 대해서는 "연극에서 거의 쓰지 않는 서라운드 시스템을 쓰고 있다"며 "처음부터 그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소극장에서 산에 고립되어 있는 공포감을 관객들이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사운드가 중요할 것 같았다. 대본에서도 '공허의 소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 공허의 소리를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했다. 앞에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날 감싸도는 소리, 바람 등 전체적으로 자연에 고립되어 있는 기분을 사운드적으로 해결하려 했다"고 전했다.
조난사고로 설산에 고립된 주인공 조 역은 배우 신성민, 김선호, 이휘종이 맡았다. 외로운 설산에서 죽음과 생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체력적, 정신적으로 깊은 연기가 요구되는 배역이다.
특히 조 역에는 지난해 10월 전 여자친구의 폭로로 사생활 논란에 휩싸였던 김선호가 이름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논란으로 공백을 가져왔던 김선호는 지난 3월 영화 '슬픈 열대' 촬영으로 활동 재개를 예고했고, 방송계에서 유명해지기 오래 전부터 먼저 자신을 알아봐줬던 대학로를 복귀 무대로 택했다. 팬들의 기다림을 증명하듯, 김선호 출연 회차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됐다.
자신의 논란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의 의미가 퇴색될 것을 염려한 듯, 기자간담회에 앞서 먼저 무대에 올라 입장을 밝혔다. 목이 메이는 듯 연신 물을 들이켠 그는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에 인사를 먼저 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나왔다. 긴장이 돼 말을 두서없이 할 것 같아 종이에 적어왔다"며 사과문을 들어올렸다.
"별 얘기는 아니고"라고 어렵게 입을 뗀 김선호는 "프레스콜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게 너무 송구스럽고 죄송하다.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많은 분들이 노력하면서 이 연극을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누가 되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팀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여러 차례 목을 가다듬고, 물을 마셨다. 직접 "긴장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왈칵 눈물을 쏟았다.
김선호는 취재진을 향해 "여기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좋지 않은 소식으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 그간 시간을 돌이켜보며 부족한 점을 많이 반성했다. 점점 더 나아지는 배우이자,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시작된 기자간담회에서 김선호는 '터칭 더 보이드' 출연 이유에 대해 "일단 작품이 좋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작품은 오래 전에 이미 제안을 받았다. 신성민 배우님을 통해 다시 한 번 대본을 읽게 됐다. 좋은 동료들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공백기 동안의 근황을 묻자 "영화 촬영을 했고"라고 답하다 이내 "뭐 딱히 한 게 없었다. 정말 공백이었다. (스스로를) 잘 추스리고 그랬다"고 했다.
그는 "산악인들은 순수하게 산을 좋아하고, 바라보더라. 그런 순수함에 집중하고 더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상황과 감정을 고민하고 공부했다"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뒤에 보이는 무대가 경사면이다. 경사면을 연습실에 들여놓을 수 없어서 다 바닥에 엎드려서 연습했다. 그 과정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또 전문 선생님이 오셔서 자문을 듣고, 공부하는 매 순간들이 내겐 연기 공부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신성민은 "이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하게 되면 고생을 많이하겠다', '이걸 해야할까?' 등의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조의 첫 등장에서 '빙벽이 너무 좋은데? 무서운데?'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세 번쯤 읽었을 때 그 대사가 들어왔다. 너무 힘들겠지만 하고 싶었다. 내년이면 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있게 선택했다. 후회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재밌게 하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휘종은 "공연이 끝나면 몸이 너무 아프다. 난 멍이 좀 많이 들더라. 산악인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로프 등의 물건들을 잘 다루고 싶어서 아직까지도 계속 연습 중이다"고 전했다. 조의 누나 새라 역은 배우 이진희, 손지윤이 연기한다. 손지윤은 "산을 구체화할 수 없어서 여러 시도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행이었던 건 팀원들이 서로 믿고 의지했다는 거다. 누군가 '이렇게 해보자'고 제안하면 '해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공연이 만들어졌다"며 웃었다.
연극 무대 외에 방송 및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는 이진희는 "무대의 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한다는 것"이라면서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게 무겁지만, 앞에 있는 관객분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건 무대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고 했다.
조와 함께 시울라 그란데를 등반하는 사이먼 역은 오정택, 정환이 맡았다. 오정택은 "장비 다루는 연습을 많이 했다. 외적으로는 내가 산악인들과 제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의 것은 더 노력해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환은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사이먼과 조의 관계, 위험한 상황에서 내린 선택의 이유 등을 찾으려 노력했다. 인물들이 각 상황에서 어떻게 느꼈을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시울라 그란데 원정 베이스 캠프 매니저 리처드 역은 조훈, 정지우가 소화한다. 리처드는 기타를 메고 노래하며 전반적인 스토리를 이끈다. 조훈은 "기타를 거의 처음 쳐봤다. 사이먼과 조의 긴급한 상황을 뚫고 나오는 볼륨이나 에너지로 불러야 해서 그런 부분을 신경 써서 연습했다"고 했고, 정지우는 "노래하는 부분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지 많이 상상했는데,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정말 연극적인 장면이 나온 것 같다. 그 장면에 항상 더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일 막을 올린 '터칭 더 보이드'는 오는 9월 1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