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혼성 1,600m 계주에서 막판 역전 허용해 동메달
필릭스, 10번의 세계선수권에서 금 13·은 3·동 3 '수확'
트랙 위에 '임신한 선수 후원금 삭감'한 브랜드 스파이크 놓고 떠나며 메시지 전해
도미니카공화국 3분09초82로 우승, 네덜란드는 펨키 볼의 역주로 2위
'모범생 스프린터'에서 '여성 인권의 아이콘'으로 영역을 넓힌 앨리슨 필릭스(37·미국)의 개인 통산 10번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수확한 19번째 메달은 금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마지막 세계선수권에서 '회심의 세리머니'로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필릭스는 16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600m 혼성 계주 결선에서 미국 대표팀의 2번 주자로 나섰다.

1위를 달리던 미국은 결승선 앞에서 도미니카공화국과 네덜란드에 연거푸 역전을 허용했고, 3분10초16의 기록으로 3위를 차지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이 3분09초82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네덜란드가 3분09초90으로 2위에 올랐다.

남녀 2명씩, 총 4명이 달리는 혼성 계주는 자유롭게 뛰는 선수를 정할 수 있다.

그러나 결선에 나선 8개 팀 모두 '남, 녀, 남, 녀' 순으로 배치했다.

미국의 1번 주자 일라이자 고드윈은 44초71에 400m를 달려 가장 먼저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겼다.

하지만 2번 주자 필릭스는 50초15로 '전체 2번 주자' 중 3번째 속력을 냈다.

도미니카공화국 2번 주자 마릴레이디 파울리노가 48초47에 질주하며 필릭스보다 빠르게 3번 주자 앞에 도달했다.

미국은 3번 버넌 노우드가 44초40으로 달려 다시 선두를 되찾았다.

그러나 앵커(마지막 주자) 케네디 사이먼의 속력이 레이스 막판 뚝 떨어졌다.

이날 사이먼의 400m 기록은 50초90에 그쳤다.

도미니카공화국 4번 주자 피오달리사 코필(49초92)에 이어 '유럽 400m 허들 일인자' 펨키 볼(네덜란드·이날 400m 기록 48초95)까지 사이먼을 제쳤다.

AFP통신은 "필릭스의 스완송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경기 뒤, 필릭스는 자신이 임신했을 때 후원금을 크게 삭감한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스파이크를 트랙 위에 내려놓고 뒤돌아 떠나는 '드라마틱한 세리머니'로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개인 종목에서는 미국 대표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한 필릭스는 1,600m 혼성 계주 결선을 끝으로 2003년 파리 대회부터 시작한 '20년의 세계선수권 여정'을 마감했다.

필릭스는 올해 4월 "2022시즌 뒤 은퇴한다"고 밝혔다.

미국육상연맹은 필릭스를 혼성 계주 멤버로 뽑으며, 마지막으로 세계선수권에 뛸 기회를 줬다.

대회 전에 이미 세계육상선수권 역대 최다 메달리스트이자, 금메달리스트 자리에 오른 필릭스는 유진에서 동메달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세계선수권 메달을 19개(금메달 1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로 늘렸다
필릭스는 올림픽에서도 총 11개의 메달(금메달 7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을 수확했다.

필릭스는 '미국이 사랑한 스프린터'였다.

다리가 유독 가늘어 '닭 다리'로 놀림당하던 필릭스는 웨이트 중량을 늘리며 근육을 단련했고, 만 19세이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적인 스프린터로 자리매김했다.

오랜 선수 생활 동안 단 한 번의 구설도 없이, 성실하게 트랙을 지켰다.

필릭스는 2018년 11월 딸 캠린을 얻은 뒤 더 주목받는 선수가 됐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임신 기간 후원금 70% 삭감'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은 스포츠계를 넘어 미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해당 브랜드는 "필릭스와 모든 여성 선수들, 팬들에게 사과한다.

앞으로 후원 선수가 임신해도 후원금을 모두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필릭스를 후원하는 스포츠 브랜드는 없었다.

필릭스는 2020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며 'SAYSH'라는 여성 스포츠용품 브랜드를 만들어 기업 후원을 받지 못하는 여성 선수들을 지원했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필릭스는 "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동안 나는 스포츠 업체의 용품 후원을 받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을 선수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필릭스는 "딸 캠린을 얻은 뒤 내 두 번째 레이스가 시작됐다"고 했다.

출산 후 처음 치른 메이저대회인 2019년 도하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1,600m 계주와 혼성 1,600m 계주 금메달을 따며 "엄마 스프린터도 할 수 있다"고 외친 필릭스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예고한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400m 동메달, 1,600m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는 "내 모든 것을 헤이워드 트랙에 쏟아붓겠다.

동시에 즐거운, 변화, 평등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목표했던 금빛 질주를 펼치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목표였던 '메시지'는 이번 대회에도 확실하게 전달했다.

함께 경기를 치른 다른 나라 선수들은 필릭스에게 다가와 '존경의 뜻'을 표했다.

선수, 팬과 '작별 인사'를 나누던 필릭스는 곧 '준비한 세리머니'를 했다.

필릭스는 성조기를 몸에 두른 뒤, 자신과 대립각을 세웠던 스포츠 메이커의 스파이크를 트랙 위에 올려놓았다.

트랙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스파이크와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 밖을 나서는 필릭스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필릭스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