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육상 영웅' 파라 "내 이름은 가짜"…힘겨운 과거사 고백

"아버지가 런던 IT 회사 다녔다고 했지만, 소말리아 내전 중 돌아가셨다"
"인신매매 형태로 영국에 왔고, 가짜 이름과 신분으로 시민권 얻어"

올림픽에서 '더블더블(2회 연속 2관왕)'을 달성한 장거리 영웅 모 파라(39·영국)가 "내 이름도, 인생도 거짓이었다"고 힘겹게 과거사를 털어놨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12일(한국시간) 곧 방영할 '인신매매 다큐멘터리' 일부를 공개했다.

'기사(Sir) 작위'까지 받은 파라도, 그동안 숨겨왔던 과거를 공개했다.

파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 진짜 이름은 무함마드 파라가 아닌 '후세인 압디 카힌'"이라며 "우리 부모는 영국에 온 적도 없다.

나는 인신매매 형태로 영국으로 와서 노동 착취를 당했고, 가짜 이름과 신분으로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애초 파라는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가족이 난민 신분으로 영국에 이주했다.

아버지는 소말리아 엘리트로, 영국 런던 IT 기업에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파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진짜 이름과 힘겨웠던 진짜 과거를 공개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소말리아 내전 중 사망했다.

어머니와 형제는 소말리아 농장에 살고 있다"며 "나는 9살 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성인 여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 여성은 '무함마드 파라'라는 이름이 적힌 가짜 여행 서류를 나에게 줬고, '네 이름은 파라'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며 "나는 영국에 사는 친척 집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영국에 도착한 뒤 그 여성은 친척 연락처가 적힌 서류를 찢어버렸고, 이후 나는 그 집에서 가사 노동 등을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파라는 12살 때부터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체육 선생님 앨런 와킨슨의 도움 속에 육상을 시작했다.

파라의 '과거사 인터뷰'가 공개되기 전까지, 파라와 와킨슨 교사의 관계는 '축구를 좋아한 파라의 육상 재능을 발견한 와킨슨이 육상 입문을 권한 것'으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더 진한 사연이 있었다.

파라는 체육 교사 와킨슨에게 '자신이 영국으로 온 이유와 현재 상황'을 털어놨다.

와킨슨은 사회복지 기관에 이를 알렸고, 파라는 '정상적인 소말리아 가정'으로 입양됐다.

파라는 육상을 시작한 순간부터 재능을 드러냈고, 14세에 라트비아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초청장을 받았다.

당시까지 영국 시민권이 없었던 파라를 위해 와킨슨 교사가 적극적으로 나섰고, '무함마드 파라'라는 이름으로 시민권을 얻었다.

파라는 "사기 또는 허위 진술로 영국 시민권을 획득한 자는 실제 사실이 밝혀지면 시민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 진짜 신분을 속였다"고 고백한 뒤 "여전히 자행되는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BBC는 "파라의 경우, 어린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당시 관계 당국에 '모 파라는 내 이름이 아니다'라고 말한 증거도 있다"며 파라가 시민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했다.

파라는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5,000ｍ·10,000ｍ를 모두 석권하며 금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 6개·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2000년대 세계 육상계에 '단거리는 우사인 볼트, 장거리는 파라'라는 공식이 지배할 정도로 패라는 실력을 갖췄고, 인기를 누렸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으며 성공 신화를 이루기도 했다.

트랙에서 신화를 일군 파라는 2017년 8월 '마라톤 전향'을 선언했다.

2018년부터 마라톤 풀 코스(42.195㎞)를 뛴 패라는 그해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05분 11초의 유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다시 트랙으로 돌아온 파라는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 올해 7월 15일 개막하는 유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따지 못했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맞은 파라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용기를 냈다.

파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통해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며 "나는 달리기를 통해 구원받았다.

참혹한 일을 겪은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바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