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ENA 방송화면 캡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ENA 방송화면 캡처
"넷플릭스 1위길래 봤는데 이 드라마 정체가 뭔가요? 멈출 수가 없네요."

대박 드라마가 탄생했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이야기다. 1회 0.9%의 시청률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가장 최근 방송된 4회가 5.2%를 기록, 시청률이 무려 4배나 껑충 뛰었다.

자폐스펙트럼을 지닌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가 변호사가 되어 대형 로펌에서 생존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는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는 호평을 얻으며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박은빈, 강태오, 강기영, 전배수 등 출연 배우들의 호연에도 칭찬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우영우'의 성공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비주류의 반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해당 드라마는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가 제작하고, 채널 ENA에 편성된 작품이다. '우영우'의 인기와 함께 온라인상에서는 "ENA가 몇 번인지 모르겠다", "처음 듣는 채널 이름이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 톱10 시리즈'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한 이 작품을 두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줄 알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제작사 에이스토리 주주들은 연일 함박웃음을 띄고 있다. 에이스토리 주가는 지난 4일(4.49%)을 시작으로 5일(7.53%), 6일(14%), 7일(6.8%), 8일(13.96%)로 5거래일 연속 급등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콘텐츠 업계는 오프라인 활동이 기지개를 켬에 따라 오리지널 IP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장기적 관점에서 단순히 작품을 '중계'하는 역할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유료 구독자를 확보해 '구독형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제작과 플랫폼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실제로 유료 가입자 상승을 끌어낸 티빙의 '술꾼도시여자들', 웨이브의 '검은 태양', 쿠팡 플레이의 'SNL' 등의 사례로 오리지널 콘텐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우영우'를 선보인 KT스튜디오지니는 지식재산권(IP) 확보부터 콘텐츠 기획, 투자, 유통까지 아우르는 법인으로, 지난해 3월 출범했다. 이미 포화 단계였던 콘텐츠 업계에 뒤늦게 발을 들인 KT의 전략은 공격적, 개방적이었다. 지난해 3조6000억원이었던 미디어 매출을 2025년까지 5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공을 들였다.

이 계획은 채널 ENA와 시너지를 냈다. ENA는 KT의 콘텐츠 그룹사 스카이티브이와 미디어지니가 리론칭한 채널이다. '우영우'의 인기 덕에 ENA는 시청률과 함께 인지도까지 올라가는 수혜를 봤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자체 플랫폼을 통해서만 공개, 유료 가입을 유도한다는 일반적인 사고에서도 완전히 탈피했다. KT는 OTT 케이티시즌을 두고 있지만, 넷플릭스에서도 '우영우'를 공개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이 영리한 전략은 제대로 통했다. 넷플릭스는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까지 끌어들이는 발판이 됐다. '넷플릭스 1위' 기록은 ENA 시청률 이상으로 다양한 곳에서 많은 이들이 '우영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넷플릭스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
넷플릭스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
'질 좋은 콘텐츠로 승부한다'는 기조가 콘텐츠 업계 전반에 깔리면서 사실상 부동의 1위는 없어졌다. 킬링 콘텐츠 하나가 성패가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기세등등하던 넷플릭스는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까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 탓에 부진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는 15일 공개하는 드라마 '블랙의 신부'를 홈쇼핑에서 소개하는 홍보 전략을 내놓기도 했는데, 구독자가 급감하고 있는 흐름을 고려하면 마냥 웃지만은 못할 상황이다.

최근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을 방문해 KT의 구현모 대표와 김철연 KT스튜디오지니 대표를 만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외에 첫 번째 오리지널 콘텐츠였던 '구필수는 없다'도 넷플릭스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바 있어 KT의 연타석 흥행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채롭게 전략적 협업을 펼치고 있는 콘텐츠 업계에서 또 새로운 시너지가 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IP의 다양한 변신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방송 2회 만에 글로벌 팬덤 커뮤니티가 오픈될 정도로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우영우'는 웹툰으로도 제작, 드라마 인기 효과를 함께 누릴 예정이다. '우영우'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짧고 강렬한 웹툰을 소비하는 독자와 깊고 긴 서사의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자, 이 두 소비층을 두루 만족시킬 의미 있는 대중문화적 시도"라는 입장이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