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란 말에 가려진 이름···그녀들은 예술가였다 [책X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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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X책'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 저자·출판사 등은 달라도 곁들여 읽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합니다."하룻밤 소설을 쓰게 해/알 수 없는 시를 쓰게 해/다음날 보고 깜짝 놀라지/수많은 예술가의 비밀의 연인" 뮤지컬 <팬레터>에서 청년 문인들은 '뮤즈'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뮤즈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다. 그리스 신화 속 예술을 관장하는 9명의 여신에서 나온 말이다. 주로 남성 화가, 조각가, 영화감독, 소설가, 시인 등의 여성 연인 혹은 흠모하는 여인이 뮤즈의 역할을 맡게 된다.
"내 모든 걸 잃어도 좋으니 오늘 밤 나의 창가에 찾아와주오!" 뮤지컬 등장인물들의 외침과 달리 현실 속에서 '모든 걸 잃는' 쪽은 주로 뮤즈인 여성들이다. 그 자신이 예술가라면 더더욱. 연인의 그림자에 고유한 작품세계가 가려져 있던 여성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책들이 최근 잇달아 출간됐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이운진 지음, 아트북스)은 시인 이운진이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 혹은 뮤즈가 아닌, 한 사람의 예술가 카미유 클로델에 대해 쓴 책이다.
클로델은 "자연을 거부한 혁명, 여성 천재"라는 극찬을 받은 조각가였다. 어려서 조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지만 진흙을 주무르고 돌을 쪼아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각을 익혔다. 열아홉 살에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 된 건 그녀에게 기회이자 비극이었다. 클로델은 로댕의 역작으로 꼽히는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등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둘의 작품은 누구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였다. 클로델은 옛 연인을 정리하지 못하던 로댕과 결별한 뒤 작품세계도 독립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미술계에서 인정받던 로댕의 그림자에 갇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로댕의 작품에도 클로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따라붙었다. 재정적 어려움과 정신병으로 인해 고통받던 그녀는 정신이상자 수용소에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책은 클로델의 욕망과 꿈, 비극을 섬세하게 조각한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깨닫는 일은 어쩌면 불운이며 어쩌면 행운이고 혹은 둘 다인지도 모른다. 빌뇌브에서 그녀는 미켈란젤로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파리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저 훌륭한 조각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인정하는 위대한 조각가로 남고 싶었다." <가브리엘레 뮌터>(보리스 폰 브라우히취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풍월당)는 독일 현대 미술의 탄생을 주도한 여성 미술가 가브리엘레 뮌터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여성 미술가를 '선천적인 아마추어'로 경멸하던 시대, 그녀는 칸딘스키의 연인으로 불린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얕본 것이다. 뮌터는 칸딘스키의 제자였지만, 칸딘스키가 뮌터의 영향으로 강렬하고 채도가 높은 색상을 쓰기 시작했을 정도로 그녀는 독보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뮌터와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 유파 '청기사파'가 탄생했다. 미술계는 뮌터가 70대에 이른 1950년대에야 비로소 그녀의 작품세계를 알아본다.
책은 뮌터의 삶과 작품에 칸딘스키가 끼친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뮌터의 작품세계를 가리고 있던 수식어를 걷어내고 다양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뮌터를 다시 읽어내려 노력한다. '뮤즈' 그 이상의 뮌터를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책은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