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세상얻기] 북치고 장구치고, 그들만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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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지난 4월 18일 서울의 한 경매법정. 이날 경매에서 경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의 한 부동산관련업체(이하 ‘H’사라고 일컬음.)가 임차인으로 입주해 있는 지하1층, 지상4층짜리 근린주택이 경매에 부쳐졌다. 물건용도가 근린주택으로 분류되었다 뿐이지 사실상 전층을 ‘H’사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부동산관련업체가 임차인으로 입주해 있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경매에 부쳐진 그 물건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 재미있다 못해 경매제도를 이렇게도 이용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아울러 경매를 조금 더 아는 사람이라면 이 사례를 보고 경매제도의 효율성과 악용의 폐단이 동시에 표출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먼저 어떤 물건인지를 한번 보자. 이 물건은 82.71평 지상에 지하1층, 지상4층 규모의 총 연면적 110.12평으로 전체를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임차인 내역을 보면 ‘H’사를 비롯하여 ‘G’사, ‘K’사 등이 임차인으로 사업자등록을 하였지만 모두 ‘H’사와 유관회사들이다. 사실상 ‘H’사의 사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등기부등본에 표출된 권리내역을 보면, 1998년 11월에 설정된 국민은행의 근저당을 필두로 이하에 근저당 3건, 가압류 3건이 설정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국민은행 근저당을 제외한 근저당 3건 중 한건은 바로 임차인으로 신고된 ‘H’사이고, 나머지 2건은 ‘H’사의 친ㆍ인척 관계자들이라는 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경매진행 당시의 소유자(채무자)인 ‘K’씨 역시 ‘H’사에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고, 이 날 경매에서의 낙찰자(낙찰가 17억8077만원)도 다름아닌 ‘H’사였다는 점이다. 임차인, 근저당권자, 낙찰자가 ‘H’사로 동일하고 다만 소유자(채무자)만 ‘H’사의 임원인 ‘K’씨 개인명의로 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인데 어떻게 경매에 부쳐지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후순위 가압류 채권액 약 4억원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다. 더 정확하게는 가압류채권이 근저당보다 후순위임을 이용하여 경매를 통해 소유자(채무자) ‘K’씨의 개인 채무관계로 발생한 가압류채권을 말소하여 등기부등본상의 권리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함이다.
낙찰가액 17억8077만원으로는 3건의 선순위 근저당채권액 20억7천만원을 우선변제하고 보면 가압류채권자는 한푼도 배당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먼저 경매신청한 채권자가 가압류채권자가 아니라 가압류보다 후순위의 근저당채권자이자 ‘H’사 대표이사의 인척인 ‘M’씨(청구채권액 4500만원)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형식은 경매절차를 빌었지만 경매에 부쳐지는 대부분의 물건이 채권자의 채권회수를 목적으로 한 것임에 반해 이 건의 경매는 그러한 채권회수가 아니라 가압류채권을 털어버리고 등기부상의 권리관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우선 목적이요, 그간 명의상 ‘H’사의 임원인 ‘K’씨가 보유하고 있었던 것을 ‘H’사가 낙찰 받음으로써 양자간의 소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함이 두 번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즉 ‘H’사가 낙찰을 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1회차에 입찰들어 오지 못하도록 ‘H’사의 유관회사인 ‘G’사 명의로 1억6500만원 상당의 유치권을 신고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결국 이 물건은 이날 1회차 경매에서 17억8077만원에 ‘H’사 단독낙찰로 일단락되었다.
위와 같은 시각, 즉 소유자(채무자)를 위해 제3자인 ‘H’사가 낙찰받은 경우 또는 사실상 ‘H’사 소유 물건을 ‘H’사가 낙찰받은 것이라면 이는 민사집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매각불허가사유(민집 제121조 제3호, 부동산을 매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최고가매수인을 내세워 매수신고를 한 때)에 해당한다. 내막을 알고 있는 이해관계인이 ‘H’사 낙찰에 대한 매각불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건 부동산에는 이해관계인이 없다.
근저당채권자인 국민은행은 최선순위 근저당채권자로서 채권액을 모두 배당받을 수 있고, 나머지 근저당채권자는 ‘H’사를 비롯하여 ‘H’사와 관계자이기 때문에 매각불허가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다른 가압류채권자인데, 가압류채권자는 가압류명령(확정판결)을 받기 전에는 이해관계인이 아니므로 매각불허가신청자격이 없다. 이러한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도 이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경매신청채권자가 ‘H’사 대표이사의 인척인 ‘M’씨라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이 건의 등기부상 권리관계를 보면 근저당(국민은행 5억2천만원) - 근저당(‘H’사 10억원) – 근저당(‘H’사 관계자 5억5천만원) – 가압류 2건(4억438만원) – 근저당(‘H’사 대표이사 인척 ‘M’씨 4500만원) – 가압류(812만원)와 같이 설정되어 있다. 얼마에 낙찰될지 모르겠지만 1회차 최저매각가인 17억5천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앞선 순위의 근저당채권자의 채권액 20억7천만원을 우선변제하고 나면 경매신청 채권자인 ‘M’씨에게는 한푼도 배당될 것이 없어 무잉여로 인해 경매가 취하되거나 낙찰이 되더라도 불허가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최초근저당권자인 국민은행이 중복경매 신청함으로써 해소되었지만, 국민은행이 실제 채권회수를 목적으로 경매를 신청했는지 아니면 ‘H’사의 취지에 동조(?)하여 무잉여에 의한 경매취소사태를 면하기 위하여 형식상 경매절차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철저한(?) 대비 끝에 ‘H’사에 낙찰되어 지난 4월 27일에 매각이 허가되었고, 이후 대금까지 납부하여 소유권이 ‘H’사에게 이전되었다. 소유자(채무자), 임차인, 근저당권자, 경매신청채권자, 낙찰자까지 모두 ‘H’사 관계자 또는 관계회사인 그야말로 북치고 장구치고.., 그들만의 잔치가 되었지만, 전문가가 보는 그 이면에는 아무런 힘없이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4억원을 날려버린 가압류채권자들의 분노가 서려있을 법해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부동산관련업체가 임차인으로 입주해 있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경매에 부쳐진 그 물건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 재미있다 못해 경매제도를 이렇게도 이용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아울러 경매를 조금 더 아는 사람이라면 이 사례를 보고 경매제도의 효율성과 악용의 폐단이 동시에 표출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먼저 어떤 물건인지를 한번 보자. 이 물건은 82.71평 지상에 지하1층, 지상4층 규모의 총 연면적 110.12평으로 전체를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임차인 내역을 보면 ‘H’사를 비롯하여 ‘G’사, ‘K’사 등이 임차인으로 사업자등록을 하였지만 모두 ‘H’사와 유관회사들이다. 사실상 ‘H’사의 사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등기부등본에 표출된 권리내역을 보면, 1998년 11월에 설정된 국민은행의 근저당을 필두로 이하에 근저당 3건, 가압류 3건이 설정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국민은행 근저당을 제외한 근저당 3건 중 한건은 바로 임차인으로 신고된 ‘H’사이고, 나머지 2건은 ‘H’사의 친ㆍ인척 관계자들이라는 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경매진행 당시의 소유자(채무자)인 ‘K’씨 역시 ‘H’사에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고, 이 날 경매에서의 낙찰자(낙찰가 17억8077만원)도 다름아닌 ‘H’사였다는 점이다. 임차인, 근저당권자, 낙찰자가 ‘H’사로 동일하고 다만 소유자(채무자)만 ‘H’사의 임원인 ‘K’씨 개인명의로 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인데 어떻게 경매에 부쳐지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후순위 가압류 채권액 약 4억원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다. 더 정확하게는 가압류채권이 근저당보다 후순위임을 이용하여 경매를 통해 소유자(채무자) ‘K’씨의 개인 채무관계로 발생한 가압류채권을 말소하여 등기부등본상의 권리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함이다.
낙찰가액 17억8077만원으로는 3건의 선순위 근저당채권액 20억7천만원을 우선변제하고 보면 가압류채권자는 한푼도 배당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먼저 경매신청한 채권자가 가압류채권자가 아니라 가압류보다 후순위의 근저당채권자이자 ‘H’사 대표이사의 인척인 ‘M’씨(청구채권액 4500만원)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형식은 경매절차를 빌었지만 경매에 부쳐지는 대부분의 물건이 채권자의 채권회수를 목적으로 한 것임에 반해 이 건의 경매는 그러한 채권회수가 아니라 가압류채권을 털어버리고 등기부상의 권리관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우선 목적이요, 그간 명의상 ‘H’사의 임원인 ‘K’씨가 보유하고 있었던 것을 ‘H’사가 낙찰 받음으로써 양자간의 소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함이 두 번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즉 ‘H’사가 낙찰을 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1회차에 입찰들어 오지 못하도록 ‘H’사의 유관회사인 ‘G’사 명의로 1억6500만원 상당의 유치권을 신고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결국 이 물건은 이날 1회차 경매에서 17억8077만원에 ‘H’사 단독낙찰로 일단락되었다.
위와 같은 시각, 즉 소유자(채무자)를 위해 제3자인 ‘H’사가 낙찰받은 경우 또는 사실상 ‘H’사 소유 물건을 ‘H’사가 낙찰받은 것이라면 이는 민사집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매각불허가사유(민집 제121조 제3호, 부동산을 매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최고가매수인을 내세워 매수신고를 한 때)에 해당한다. 내막을 알고 있는 이해관계인이 ‘H’사 낙찰에 대한 매각불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건 부동산에는 이해관계인이 없다.
근저당채권자인 국민은행은 최선순위 근저당채권자로서 채권액을 모두 배당받을 수 있고, 나머지 근저당채권자는 ‘H’사를 비롯하여 ‘H’사와 관계자이기 때문에 매각불허가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다른 가압류채권자인데, 가압류채권자는 가압류명령(확정판결)을 받기 전에는 이해관계인이 아니므로 매각불허가신청자격이 없다. 이러한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도 이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경매신청채권자가 ‘H’사 대표이사의 인척인 ‘M’씨라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이 건의 등기부상 권리관계를 보면 근저당(국민은행 5억2천만원) - 근저당(‘H’사 10억원) – 근저당(‘H’사 관계자 5억5천만원) – 가압류 2건(4억438만원) – 근저당(‘H’사 대표이사 인척 ‘M’씨 4500만원) – 가압류(812만원)와 같이 설정되어 있다. 얼마에 낙찰될지 모르겠지만 1회차 최저매각가인 17억5천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앞선 순위의 근저당채권자의 채권액 20억7천만원을 우선변제하고 나면 경매신청 채권자인 ‘M’씨에게는 한푼도 배당될 것이 없어 무잉여로 인해 경매가 취하되거나 낙찰이 되더라도 불허가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최초근저당권자인 국민은행이 중복경매 신청함으로써 해소되었지만, 국민은행이 실제 채권회수를 목적으로 경매를 신청했는지 아니면 ‘H’사의 취지에 동조(?)하여 무잉여에 의한 경매취소사태를 면하기 위하여 형식상 경매절차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철저한(?) 대비 끝에 ‘H’사에 낙찰되어 지난 4월 27일에 매각이 허가되었고, 이후 대금까지 납부하여 소유권이 ‘H’사에게 이전되었다. 소유자(채무자), 임차인, 근저당권자, 경매신청채권자, 낙찰자까지 모두 ‘H’사 관계자 또는 관계회사인 그야말로 북치고 장구치고.., 그들만의 잔치가 되었지만, 전문가가 보는 그 이면에는 아무런 힘없이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4억원을 날려버린 가압류채권자들의 분노가 서려있을 법해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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