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경쟁작 '헤어질 결심' 공개…"폭력·섹스 없이 스며들고 싶어"
"탕웨이 염두에 두고 각본 집필…캐스팅 절박했죠"
박찬욱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전작은 잊고 봐주길"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영화를 목표로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폭력과 섹스를 강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잖아요.

좀 더 미묘하게 관객에게 스며드는 영화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
6년 만의 장편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을 선보인 박찬욱 감독은 23일(현지시간)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첫 상영 전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감독은 "제 이전 영화에 비하면 자극적인 영화가 아니라 심심하다고 하실 수도 있다"면서 "전작들은 잊고 봐달라"며 웃었다.

"잘못하면 구식인 영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고전적이면서 우아한 영화를 원래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 넓게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이런 양상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죠. 두 주인공이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관객들이 인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이번 칸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초청된 '헤어질 결심'은 변사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 감독의 말대로 기존 작품과는 표현법이 달라졌지만, 폭력 없이도 잔혹하고 섹스 없이도 야하다.

박 감독은 "여러 장르 영화를 즐기다 보니 이런저런 것을 해보고 싶었다"면서도 특별한 도전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웃기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저는 정말로 그동안 로맨스 영화를 해왔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로코'라고 표현합니다.

로맨스와 코미디 요소가 중심에 있던 작품들이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또 하나의 로코를 만드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어요.

"
박찬욱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전작은 잊고 봐주길"
'헤어질 결심'의 시작은 박 감독이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영국에서 촬영했을 당시 휴가차 방문한 정서경 작사를 만나면서부터다.

'친절한 금자씨' 때부터 박 감독의 거의 모든 한국 영화에 참여한 그는 "놀기만 하지 말고 일도 좀 하자"며 박 감독을 커피숍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백지상태에서 나눈 '아무 말 대잔치'는 어느새 시놉시스로 발전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부터 미스터리한 여주인공 서래 역으로 탕웨이를 점찍어 놓은 상태였다고 박 감독은 말했다.

"깨끗하고 예의 바른데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자고 먼저 가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 작가가 바로 '그럼 여자 주인공은 중국인으로 해요.

그래야 탕웨이 캐스팅할 수 있잖아요.

"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박 감독은 탕웨이 말고는 어떤 배우도 염두에 두지 않은 만큼 그를 캐스팅하는 게 "굉장히 절박한 문제"였다며 "통역을 대동해 2시간 동안 각본도 없이 스토리만 들려줬다"고 말했다.

다행히 탕웨이가 박 감독의 캐스팅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서래라는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작품에서 내내 호연을 선보인 그는 '올드보이' 미도, '친절한 금자씨' 금자, '박쥐' 태주, '아가씨' 히데코와 숙희를 이어 박찬욱 영화 세계관의 대표적인 여자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박 감독이 박해일과 작업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해준 역에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걸 기다릴 수 없어 다짜고짜 전화해 '우리 좀 만나자'고 했다"면서 "해일씨가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감독님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냐고 하더라"며 웃었다.

박해일 역시 결벽적이면서 욕망에 조심스러운 해준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박찬욱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전작은 잊고 봐주길"
박 감독은 다시 한번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소회도 밝혔다.

'깐느 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전에 심사위원대상(올드보이)과 심사위원상(박쥐)을 받은 만큼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히는 상황이지만 박 감독은 "이렇게 다 같이 다 모여서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다.

"정서경 작가와 커피숍에서 만난 자리에서 '헤어질 결심'이 시작됐듯이, '뭘 쓰면 우리가 재밌게 일할 수 수 있을까'가 가장 우선순위입니다.

그냥 '재미'를 생각할 뿐이에요.

큰 호응을 얻으면 좋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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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전작은 잊고 봐주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