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환불해달라" 요청 빗발…행정력 낭비 자초
폐지냐 개선이냐 갈림길…개선책 내놓을까 관심
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환경부 산하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게시판에 올린 내용이다.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의 시행을 6개월간 유예한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제도 시행 3주 전에야 부랴부랴 유예를 결정한 배경엔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압박과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발이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구매할 때 보증금 300원을 음료값과 함께 결제한 뒤 컵을 반납할 때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환경부는 전국에 점포 100개 이상을 운영하는 105개 브랜드의 전국 3만8000여 개 매장을 제도 시행 대상으로 삼았다. 보증금 반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라벨의 구입과 부착, 반환 컵 수거 및 보관, 300원 반환 등 모든 업무와 비용을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떠안는 구조다.
◆늦은 유예 결정에 "보증금 환불해 달라"
환경부가 정책 시행을 연착륙시키려다 간과한 것은 커피 산업의 구조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규모가 큰 기업이라고 해도 그 가맹점주들은 소상공인인 경우가 많다. 개중엔 1인 카페도 적지 않다는 게 가맹점주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의 회복을 갓 꿈꾸기 시작하던 소상공인들에게 비용과 부담을 전가하는 보증금제는 버거운 정책이다.환경부의 사전 홍보 부족이 이런 혼란을 가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작년 6월 2일 국무회의 의결로 보증금제 시행이 사실상 확정됐지만, 그 후 약 2년이라는 기간이 있었음에도 대국민 홍보는 거의 없었다. 환경부는 시행 3개월 전에서야 전국 설명회를 시작했고, 지난 5일 한차례 시연회를 가졌을 뿐이다. 실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책임에도 사전 논의가 부족하고 갑작스럽다고 느낀 국민들이 많았다는 평가다.
늦은 유예 결정이 행정력 낭비를 자초하기도 했다. 라벨의 배송은 주무 관청인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선급금 지급이 확인된 이후 3주가 걸린다는 환경부의 방침에,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법시행 3주 전인 지난 18일 전후로 가맹점주들에게 라벨 주문을 지시했다.
이 때문에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는 보증금제 시행 유예 직전까지 입금을 완료한 가맹점주들의 환불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라 최대한 빨리 환불해달라는 요청도 보인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귀 열고, 유예기간 충분히"
환경부의 유예 결정에도 가맹점주들의 분노는 그치지 않고 있다. 시행유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폐지하라는 요구도 거세다. 보증금제를 위해 설치된 주무관청인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를 폐지하라는 요구까지 나온다.하지만 플라스틱 배출량 감축이라는 보증금제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시행 유예를 요청했던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장도 "보증금제는 순환 경제 및 탄소 중립 추진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부합하며 반드시 실시돼야 한다"며 제도 폐지 주장에는 선을 그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는 일단 6개월 유예가 됐지만,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제도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점주들만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정부와 유예 이후 시행방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협의회 측은 지난 20일 환경부가 연 간담회에서도 환경부에 “단계적으로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협의회는 이 자리에서 △6개월 동안 특정 지역에서 보증금제를 시범 적용 △그다음 6개월 동안 가맹본부가 운영하는 직영점만 제도 시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후 일회용 컵 사용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전면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협의회는 또 일회용 컵당 보증금 300원의 환급 금액을 추후 200원, 100원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했다. 일회용 컵을 반납할 때 보증금을 전액 환급받으면 소비자들은 계속 일회용 컵을 쓰게 돼 제도를 도입한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설명이다.
환경부는 이런 제안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다가 간담회 종료 직후 유예 결정을 발표했다. 제도 시행 시점만 미룬 것인지, 제도를 손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정이다.
때문에 남은 6개월간 국회와 정부가 법 개정을 포함해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곽용희/하수정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