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프장에서나 5월은 최고 성수기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골퍼들로 꽉 들어찬다. 비수기보다 그린피를 두 배 올려도 어김없이 ‘풀 부킹’이다.

하지만 손꼽히는 명문 골프장인 경기 파주 서원밸리CC는 매년 5월 마지막 토요일에 골퍼를 받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무료 뮤직 페스티벌을 열기 위해서다. 페어웨이는 소풍 나온 가족들의 쉼터가 되고, 벙커는 어린이들의 씨름장으로 변신한다. 2000년 시작한 ‘서원밸리 자선 그린콘서트’는 코로나19로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진 지난 2년을 제외하곤 매년 이맘때 이곳에서 열렸다.

오는 28일 3년 만의 콘서트 재개를 앞두고 서원밸리CC를 거느린 대보그룹의 최등규 회장(74·사진)을 20일 만났다. 최 회장은 “지난 2년간 콘서트를 못 열어 파주 일대 주민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었다”며 “드디어 마음의 빚을 갚을 때가 왔다”며 웃었다.

20년 역사가 쌓이면서 그린콘서트는 파주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축제 중 하나가 됐다. 방탄소년단(BTS), 워너원 등 인기 아이돌이 재능기부 형태로 무대에 오른 덕분에 해외에서도 찾는 행사가 됐다. 첫해 1500명 정도였던 방문객은 2019년 4만5000명 규모로 30배나 커졌다. 올해 공연은 ‘힐링’을 전면에 내세웠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이 다시 힘을 내도록 응원한다’는 최 회장의 취지에 공감한 백지영, 장민호, 펜타곤, AB6IX 등 톱스타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탓에 농장주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쌀 한 말을 지고 서울로 올라와 맨손으로 일궈낸 회사가 지금의 대보그룹이다. 전국 66개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를 운영하는 대보유통을 비롯해 대보정보통신, 대보건설, 서원레저 등을 보유하고 있다.

골프 사랑도 각별하다. 지금도 하루 36홀을 카트 없이 소화한다. 최근 대보건설 골프단도 창단했다. 최 회장은 “미스샷을 치더라도 트러블샷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골프처럼 사업 역시 매 순간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며 “사업 초창기에 혹독한 시련을 겪고 건설업으로 재기한 저에게 골프는 언제나 큰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자그마한 조형물, 나무 한 그루 등 서원밸리CC에 있는 모든 걸 눈에 넣고 산다”고 했다. 이렇게 애정을 쏟는 공간을 무료로 개방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최 회장은 “제가 사랑하는 골프가 지역주민들에게 행복을 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자선공연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잔디밭에서 뛰어놀던 어린이들이 ‘그린콘서트 할아버지, 같이 사진 찍어요’라고 달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사업에서 쌓인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그린콘서트를 여느라 들이는 돈과 포기하는 수익을 합치면 15억원에 달한다. 올해로 18회를 맞았으니 지금까지 100억원 넘게 기부한 셈이다. 최 회장은 “1년 중 가장 좋은 날, 지역 주민들에게 멋진 기억을 선물한다는 뿌듯함에 1년 동안 힘차게 일할 에너지를 얻는다”며 “그린콘서트는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