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직원, 2012년 "부동산 신탁 맡긴다"며 상사 승인받고 송금
옛 대우일렉 채권단의 우리은행 자산 관리 동의는 2013년
"채권단 동의없는 신탁 의사결정, 비상식적"…내부통제 비판 다시 불거질듯
우리은행, 채권단 동의없이 이란 엔텍합 계약금 운용하려 했나
614억원 횡령 사태가 발생한 우리은행이 2010년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주관은행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채권단 동의 없이 돈을 임의로 운용하려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의 돈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던 우리은행 한 직원은 2012년 부동산 신탁 회사에 이를 맡긴다며 상부로부터 송금을 승인받은 뒤 빼돌렸는데, 채권단은 2013년에야 우리은행의 돈 관리·집행에 대해 동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2010년 진행됐던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협상에서 주관은행 역할을 맡았던 우리은행은 채권단이 구성한 사후관리협의회를 대상으로 2013년 3월 29일 '주관기관이 유보금을 관리 및 집행한다'는 안건을 부의해 의결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주관기관은 우리은행이고, 유보금은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이 2010년 이란 다야니 가문 소유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받은 매각 계약금 578억원이다.

당시 계약이 최종 불발돼 채권단은 이를 몰수했으나 엔텍합이 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예고한 상황이어서, 우리은행이 채권단 지분율에 따라 배분하지 않고 일단 갖고 있었다.

이 돈은 다야니 가문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2019년 말 최종 승소하며 돌려받기로 했는데, 우리은행 본점 기업개선부 소속 차장급 직원 A씨가 2012년부터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모두 빼돌린 것으로 최근 조사됐다.

현재 경찰을 거쳐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 중이다.

통상 주채권은행이 채권단의 돈을 보관할 때는 약정을 체결해 관리, 자산 운용, 집행 여부 등에 대해 동의를 받는다.

이런 차원에서 2013년 안건이 의결됐고, 이에 따라 우리은행이 자산 운용과 같은 돈 관리를 정식 허가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해당 안건은 계약금 보관뿐만 아니라 운용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안건이 의결되기 1년 전 우리은행이 이미 이 돈을 부동산 신탁회사에 맡긴다(운용)는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횡령 혐의를 받는 A씨는 2012년 10월 12일 계약금 중 2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부동산 신탁회사에 맡기겠다며 상사로부터 송금을 승인받은 것으로 우리은행은 현재까지 파악하고 있다.

이런 경위가 사실이라면, 채권단이 자산운용에 동의하지도 않은 시점에 차익 실현 등을 위해 돈을 굴리려 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의 동의 없었다면 자산을 운용해선 안 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우리은행 측은 "해당 사건은 수사 중이어서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씨가 채권단으로부터 자산 운용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는 내용까지 위조해 송금을 승인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A씨에게 공문서위조 및 행사, 사문서위조 및 행사 혐의도 적용해 송치한 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당 부서 동료나 상사가 채권단의 동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한 번 더 진행하지 않았다는 뜻이어서 내부통제에 대한 비판이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

2013년 실제로 채권단이 자산 관리에 대한 동의 안건을 통과시켰을 때 우리은행이 한 번 더 2012년의 송금 경위를 확인했더라면 사태가 더욱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소송에 묶여있는 법인 예치금을 신탁에 맡겨 운용하도록 우리은행이 승인했다는 점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사례의 경우 소송이 금방 끝날지 장기화할지 모르는데, 만기가 정해져 있는 정기예금이나 신탁에 채권단 돈을 넣는 것은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를 우리은행이 승인했다는 것도 일반적이진 않다"라고 설명했다.

수사기관이 이 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A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서를 위조했고, 어떤 부동산 신탁 상품을 이용하겠다고 상부에 보고해 송금을 승인을 받았는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은행의 의사결정과 내부통제에 대한 신뢰도는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사태 발생한 직후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회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은행, 채권단 동의없이 이란 엔텍합 계약금 운용하려 했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