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에 걸친 작업 선보인 개인전 '물(物)에서 물(水)로'
바다로, 회화로 돌아온 조각가 심문섭…"한곳에 머물 수 없어"
"어제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도 한곳에 머물 수 없습니다.

"
경남 통영 출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조각가 심문섭(79)이 고향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15년에 걸쳐 작업한 회화를 총체적으로 선보이는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0일 개막한 '물(物)에서 물(水)로'에 전시된 회화 40여 점은 바다를 펼치고 있었다.

전시작 대부분은 단색화처럼 추상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세로로 붓질된 푸른색 선들이 겹쳐진 화폭에는 풍경은 뚜렷하지 않지만, 푸른 바다가 담겼다.

바다로, 회화로 돌아온 조각가 심문섭…"한곳에 머물 수 없어"
작가는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다를 쳐다보면서 그리는 그림은 아니다"라며 "내 뇌리에 각인된 총체적인 어떤 하나의 바다"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바다를 평면 회화로 구현하기 위해 "시간 단위로 쪼개지는, 순간순간 잘리는 요소가 가미돼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무한대의 질서를 갖게 패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풍경화가 바다를 그림에 가두는 것과 달리 패턴이 된 바다는 캔버스 밖으로 퍼져나간다.

심문섭의 회화는 팽창하는 특징을 갖는다.

바다로, 회화로 돌아온 조각가 심문섭…"한곳에 머물 수 없어"
'섬으로(To the Island)'란 제목의 연작들은 큰 캔버스로 작업한 대작들이 주를 이룬다.

전시장 한쪽 면을 독차지한 작품(2018년 작)은 120호짜리 캔버스 6개를 합친 것으로 가로가 582㎝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작가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그러한 것(작업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심문섭의 회화는 거의 모두 유성물감으로 밑칠을 하고서 그 위에 수성인 아크릴물감을 덧칠하는 방식이다.

넓은 페인트 붓으로 반복되는 붓질은 조각가의 끌질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는 "수성 물감은 유성에 반발해서 묻지 않기 때문에 수십번 덧칠을 해나간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하나의 생각하지도 못했던 질서들이 펼쳐졌다"고 설명했다.

바다로, 회화로 돌아온 조각가 심문섭…"한곳에 머물 수 없어"
작가는 1965년 서울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테라코타 작품으로 수상한 이후 점토로 작업을 주로 하면서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시도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30회 이상 개인전을 개최한 작가는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열리는 전시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초대됐다.

1971년부터 파리 비엔날레에 3회 연속 참가한 것을 비롯해 상파울루 비엔날레(1975년), 시드니 비엔날레(1976년), 베니스 비엔날레(1995, 2001년) 등의 국제무대에서도 명성을 높여 200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이런 업적은 작가가 1970년대부터 전통 조각 개념에 반발하는 '반(反)조각'을 주창하며 전위적인 작업을 펼쳤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바다로, 회화로 돌아온 조각가 심문섭…"한곳에 머물 수 없어"
심은록 미술비평가는 "심문섭의 회화는 '반조각'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회화작품은 넓은 의미의 반조각으로 조각을 넘어 예술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로 이동한다"고 평했다.

전시회 제목인 '물(物)에서 물(水)로'는 70대 들어 조각보다 회화가 중심이 된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함축한다.

심문섭은 한자 物(물)은 사물을 조각하는 것을, 한글 물(水)은 그림을 말한다면서 "내 그림의 대상인 바다도 물이고, 아크릴물감은 수성이라 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팔순을 맞은 작가가 국내에서 5년 만에 개최하는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근작들은 규모 면에서도 대작이면서 아름답게 바다를 펼쳐낸 대작이기도 하다.

전시에 맞춰 펴낸 시화집 '섬으로'에서 작가는 "바다는 아름다움의 고향이다"라고 썼다.

전시는 6월 6일까지.
바다로, 회화로 돌아온 조각가 심문섭…"한곳에 머물 수 없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