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윌슨 응이 이끄는 한경art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4번을 연주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지난 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윌슨 응이 이끄는 한경art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4번을 연주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서울시향 수석부지휘자인 홍콩 출신 윌슨 응(33)과 2017년 뮌헨ARD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손정범(31)이 한경arte필하모닉의 무대에서 만났다. 지난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국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 두 번째 공연에서다.

이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은 완벽한 화음과 비장한 감성의 균형을 요구하는 베토벤과 낭만적인 드라마를 펼치면서도 절대음악을 지향하는 시벨리우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작품에 접근하는 두 젊은 음악가의 도전만으로도 호기심과 흥미를 끌었다.

첫 곡인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은 네덜란드 독립투사 에그몬트 백작을 주제로 하는 연극 음악인 만큼 좌중을 압도하는 극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모든 악기가 동일한 F음을 내는 시작부터 완벽한 하모니가 담보돼야 한다. 윌슨 응과 한경arte필하모닉은 풍부한 음향으로 이 작품이 요구하는 수준 높은 화음을 들려줬다.

여기에는 여섯 대의 더블베이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저음에 공명하는 홀에서 충분한 배음을 만들었고, 고음 악기들이 이에 맞춰 음들을 쌓으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쉼표에서 잔향을 고려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음악홀을 악기로 다루는 지휘자의 역량이 돋보였다. 또한 목관의 활약은 음색적인 특징을 놓치지 않아 작품의 서사적 측면을 부각하는 데 일조했다. 악보 넘기는 소리 등 불필요한 소음은 귀에 거슬렸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4번은 두 거대한 협주곡(3번과 5번) 사이에 끼어 있는 비교적 서정적인 작품이다. 반주에 가까운 관현악은 서사를 이끌고 피아노는 상당한 기교로 이목을 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이 소외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뤄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한경arte필하모닉은 1악장을 편안하고 목가적으로, 2악장은 자연의 힘 앞에 선 듯 엄숙하게, 3악장에선 축제와 같이 연주하며 서사를 이끌었다.

피아니스트 손정범은 자연스럽게 연주하면서 타건, 강약, 잔향 등을 조절하며 희로애락이 담긴 다양한 표정을 들려줬다. 이런 관현악과 피아노는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속에서 한 인물이 겪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대화하며 조화를 이뤘다. 손정범은 앙코르로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첫 곡을 꿈속에 그리듯 연주했다.

후반부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으로 또 다른 고전의 감동을 선사했다. 이 작품의 관현악은 각 악기군의 앙상블을 강조하고 대조시켜 음색을 강조한다. 지휘자는 각 앙상블의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전체 시나리오에 기여하도록 조직해야 한다. 윌슨 응과 한경arte필하모닉은 탄탄한 앙상블을 들려줬다.

이는 앞서 언급한 더블베이스의 충분한 저음 덕분이다. 다른 현악기들이 활 전체를 사용해 공명을 만들어낸 것도 주효했다. 전체적으로 현악기군은 시벨리우스의 음악에 매우 적합한 음향적 바탕이 됐다. 2악장에서는 목관의 독주와 현악 앙상블이 고독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으며, 4악장은 금관 앙상블의 활약이 돋보였다. 여기에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하는 지휘자의 동작이 각 악기군의 앙상블로부터 폭넓은 완급 조절과 특징적인 극적 표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공이 크다.

종종 잔향을 고려한 쉼은 진행에 방해가 됐다. 전반부 베토벤 작품에선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가 있었던 데 비해 사슬처럼 연결돼 있는 시벨리우스 작품에선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으로 인지됐기 때문이다. 앙코르로 들려준 ‘핀란디아’는 각 악기군의 조화가 훌륭했다. 작품이 가진 드라마가 충분히 구현돼 객석의 큰 갈채를 받았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