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유출 피해 겪은 모녀…닮은듯 다른 영화 '경아의딸'·'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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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여풍'…한국경쟁 부문 9편 중 8편 여성 서사
최근 개막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의 키워드는 '여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 9편 중 8편이 여성 서사를 내세웠으며, 이 가운데 7편은 여성 감독이 연출했다.
'경아의 딸'(김정은 감독), '내가 누워있을 때'(최정문), '비밀의 언덕'(이지은), '사랑의 고고학'(이완민), '윤시내가 사라졌다'(김진화), '잠자리 구하기'(홍다예), '정순'(정지혜) 등이다.
특히 '경아의 딸'과 '정순' 두 작품은 최근 몇 년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불법 영상 유출 피해를 겪은 모녀 이야기를 그려 눈길을 끈다.
설정만 보면 닮은 꼴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주제를 담았다.
◇ 스스로를 탓하던 딸, 딸을 탓하던 엄마…화해와 치유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경아(김정영 분)의 자랑은 하나뿐인 딸 연수(하윤경)다.
변호사, 의사 딸도 부럽지 않다고 말하는 경아의 딸 연수는 고등학교 교사로, 최근 엄마와 떨어져 독립을 시작했다.
경아는 그런 딸이 행여 자취방에 남자를 데려오지는 않을까,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다.
연수의 전 남자친구가 이별을 복수하기 위해 연수와 찍은 은밀한 동영상을 지인에게 뿌리면서 경아의 우려는 현실이 된다.
경아는 동영상 속 딸의 모습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입고, 연수를 "걸레"라 밀어붙이며 모든 것을 딸 탓으로 돌린다.
연수 역시 자신을 탓하며 학교까지 관둔다.
성인 사이트에 게재된 동영상을 지우는 데 돈을 쓰느라 생활이 빠듯해진 그는 온라인 강사로 직업을 바꾼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얼굴 없는 강사로 일을 시작한다.
엄마와도 연을 끊다시피 한 그는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영화는 영상 유출 피해를 본 여성이 어떤 일을 겪어내는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가해자는 앞길이 창창한 청년으로 둔갑하고, 피해자는 쥐 죽은 듯 숨어지내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남편에게 학대당한 경아, 남자친구와 잤다고 소문이 날까 두려워하는 연수의 제자 등을 통해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를 고발한다.
하지만 초반부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에 초점을 맞추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치유와 회복으로 시선을 옮긴다.
연수가 어떻게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조심스레 다시 사회로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면서, 피해자가 점차 '피해자성'을 벗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와 딸의 관계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경아는 딸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지친 연수가 합의를 하려고 하자 극구 뜯어말린다.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경아의 딸'에 대해 "자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음에도 자신을 탓하기만 하는 연수와, 딸을 위해 무언가 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엄마 경아를 보는 건 힘든 일"이라면서도 "다행인 건 이 모녀 사이에도 여느 엄마와 딸들이 가진 내밀한 소통 채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 춤추는 중년 여성 조롱하는 사회…엄마 위해 분투하는 딸
반면 '정순'에서 영상 유출 피해를 겪는 사람은 젊은 딸이 아니라 늙은 엄마다.
공장에서 일하는 정순(김금순)은 이름처럼 정순하게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다.
아들뻘 관리자가 반말로 지시를 해도 허허 웃어넘기는 그는 공장에서 운명처럼 또래의 남자 영수(조현우)를 만난다.
빠르게 가까워진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정순은 영수가 머무는 모텔에 드나든다.
오랜만에 설렘을 느끼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뒤에서 키득거리는 동료들을 보고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
그리고 연인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동영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식을 들은 딸(윤금선아)은 결혼 준비도 제쳐두고 영수를 처벌하기 위해 엄마를 설득한다.
그는 휴대전화를 보며 피식 웃는 사람만 봐도 혹시 엄마의 동영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정순 역시 밖을 나설 때면 얼굴을 꼭꼭 숨긴다.
주목할 점은 '경아의 딸'에서 20대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 했던 성인사이트 누리꾼들과는 달리, '정순'에서 동영상을 돌려보는 동료들은 정순을 철저히 조롱거리로 삼는다는 점이다.
'섹시하지 않은' 50대 여성을 사회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반영한 듯하다.
그러나 정순은 고심 끝에 자신을 깔보는 동료들 앞에 당당히 나선다.
공장에 쌓인 박스를 집어 던지고, 실컷 보란 듯이 영상 속에서 불렀던 노래를 똑같이 부르며 춤추기까지 한다.
딸에게는 자기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소리도 지른다.
'정순'은 결국 스스로 벽을 깨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인 셈이다.
문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딸이 이 문제를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하자 정순이 '모두 내 일이니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소리치는 대목"이라며 "내면의 괴로움과 딸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자존감이 어우러지는 이 장면은 이후 정순의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 9편 중 8편이 여성 서사를 내세웠으며, 이 가운데 7편은 여성 감독이 연출했다.
'경아의 딸'(김정은 감독), '내가 누워있을 때'(최정문), '비밀의 언덕'(이지은), '사랑의 고고학'(이완민), '윤시내가 사라졌다'(김진화), '잠자리 구하기'(홍다예), '정순'(정지혜) 등이다.
특히 '경아의 딸'과 '정순' 두 작품은 최근 몇 년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불법 영상 유출 피해를 겪은 모녀 이야기를 그려 눈길을 끈다.
설정만 보면 닮은 꼴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주제를 담았다.
◇ 스스로를 탓하던 딸, 딸을 탓하던 엄마…화해와 치유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경아(김정영 분)의 자랑은 하나뿐인 딸 연수(하윤경)다.
변호사, 의사 딸도 부럽지 않다고 말하는 경아의 딸 연수는 고등학교 교사로, 최근 엄마와 떨어져 독립을 시작했다.
경아는 그런 딸이 행여 자취방에 남자를 데려오지는 않을까,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다.
연수의 전 남자친구가 이별을 복수하기 위해 연수와 찍은 은밀한 동영상을 지인에게 뿌리면서 경아의 우려는 현실이 된다.
경아는 동영상 속 딸의 모습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입고, 연수를 "걸레"라 밀어붙이며 모든 것을 딸 탓으로 돌린다.
연수 역시 자신을 탓하며 학교까지 관둔다.
성인 사이트에 게재된 동영상을 지우는 데 돈을 쓰느라 생활이 빠듯해진 그는 온라인 강사로 직업을 바꾼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얼굴 없는 강사로 일을 시작한다.
엄마와도 연을 끊다시피 한 그는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영화는 영상 유출 피해를 본 여성이 어떤 일을 겪어내는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가해자는 앞길이 창창한 청년으로 둔갑하고, 피해자는 쥐 죽은 듯 숨어지내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남편에게 학대당한 경아, 남자친구와 잤다고 소문이 날까 두려워하는 연수의 제자 등을 통해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를 고발한다.
하지만 초반부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에 초점을 맞추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치유와 회복으로 시선을 옮긴다.
연수가 어떻게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조심스레 다시 사회로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면서, 피해자가 점차 '피해자성'을 벗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와 딸의 관계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경아는 딸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지친 연수가 합의를 하려고 하자 극구 뜯어말린다.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경아의 딸'에 대해 "자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음에도 자신을 탓하기만 하는 연수와, 딸을 위해 무언가 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엄마 경아를 보는 건 힘든 일"이라면서도 "다행인 건 이 모녀 사이에도 여느 엄마와 딸들이 가진 내밀한 소통 채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 춤추는 중년 여성 조롱하는 사회…엄마 위해 분투하는 딸
반면 '정순'에서 영상 유출 피해를 겪는 사람은 젊은 딸이 아니라 늙은 엄마다.
공장에서 일하는 정순(김금순)은 이름처럼 정순하게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다.
아들뻘 관리자가 반말로 지시를 해도 허허 웃어넘기는 그는 공장에서 운명처럼 또래의 남자 영수(조현우)를 만난다.
빠르게 가까워진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정순은 영수가 머무는 모텔에 드나든다.
오랜만에 설렘을 느끼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뒤에서 키득거리는 동료들을 보고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
그리고 연인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동영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식을 들은 딸(윤금선아)은 결혼 준비도 제쳐두고 영수를 처벌하기 위해 엄마를 설득한다.
그는 휴대전화를 보며 피식 웃는 사람만 봐도 혹시 엄마의 동영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정순 역시 밖을 나설 때면 얼굴을 꼭꼭 숨긴다.
주목할 점은 '경아의 딸'에서 20대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 했던 성인사이트 누리꾼들과는 달리, '정순'에서 동영상을 돌려보는 동료들은 정순을 철저히 조롱거리로 삼는다는 점이다.
'섹시하지 않은' 50대 여성을 사회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반영한 듯하다.
그러나 정순은 고심 끝에 자신을 깔보는 동료들 앞에 당당히 나선다.
공장에 쌓인 박스를 집어 던지고, 실컷 보란 듯이 영상 속에서 불렀던 노래를 똑같이 부르며 춤추기까지 한다.
딸에게는 자기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소리도 지른다.
'정순'은 결국 스스로 벽을 깨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인 셈이다.
문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딸이 이 문제를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하자 정순이 '모두 내 일이니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소리치는 대목"이라며 "내면의 괴로움과 딸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자존감이 어우러지는 이 장면은 이후 정순의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