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9명 공동 작업…전통문화연구회 "무너진 한자문화 회복"
중국 한자학 정수 '설문해자주' 번역본 첫 책 출간
중국 최고의 한자 해설서로 꼽히는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를 10년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의 첫 성과물이 나왔다.

전통문화연구회가 최근 발간한 '역주 설문해자주' 1권이다.

이충구·임재완 단국대 연구원, 성당제 전통문화연구회 강사, 김규선 선문대 교수, 조성덕 단국대 선임연구원이 함께 번역했다.

출토 문자 자료 연구는 원용준 충북대 교수, 박재복 경동대 교수, 김혁 경상국립대 교수, 김정남 단국대 연구교수가 했다.

설문해자주는 한나라 학자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를 청나라 고증학자 단옥재(段玉裁·1735∼1815)가 해설한 책이다.

허신은 생몰년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58년에 태어나 148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문해자는 한자 9천353자의 본래 글자 모양과 뜻, 발음을 풀이했다.

예컨대 하늘 천(天)에 대해 "꼭대기이다.

지극히 높아 위가 없다.

일(一)·대(大)를 따랐다"고 설명했다.

단옥재는 이처럼 짧은 해설을 보완하기 위해 원서보다 훨씬 내용이 풍부하고 분량이 많은 주석을 붙였다.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는 설문해자를 나라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약용도 설문해자를 활용한 학설을 제시했다.

설문해자주는 추사 김정희가 탐독했다고 알려졌다.

책임 번역자인 이충구 연구원은 "설문해자주는 한자에 관한 최고 원전이자 옥편의 원조"라고 강조했다.

동양철학 연구자인 박홍식 전통문화연구회 회장은 "중국 문자를 '한자'(漢字)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한나라 때 기술된 설문해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신이 없었다면 중국인들은 한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설문해자는 단순히 글자를 풀이한 책이 아니라 중국 철학, 사상, 문학을 집대성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전통문화연구회는 설문해자주를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단옥재가 작업을 마친 뒤 각지에서 발견된 갑골문(甲骨文), 백서(帛書·비단에 쓴 글), 죽간(竹簡·글자를 적은 대나무 조각)과 다양한 문헌을 분석한 결과를 부록으로 실었다.

책의 부제가 '출토자료 보주(補註)'인 이유다.

보주는 주석의 부족한 점을 보충한 주석이다.

국내 학자들은 한나라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상나라와 춘추전국시대 문자 자료를 검토해 "하늘 천은 정면으로 서 있는 사람의 머리를 강조한 상형자로, 머리 부분의 원형 또는 사각형 모양이 필획으로 바뀌었다"와 같은 내용을 추가했다.

박 회장은 동아시아출토문헌연구회 학자들이 집필한 보주를 '역서 설문해자주' 특징이자 학문적 업적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현대에 이렇게 완전한 책을 만들지 못했다"며 "설문해자주 번역과 연구 작업은 한국에서 무너진 한자문화를 회복하고,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다른 나라와 한자학 분야의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물창고와도 같은 한자문화를 다음 세대에 계승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이처럼 중요한 번역 작업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지원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권에는 한자 212자에 대한 설명이 담겼다.

2∼3권은 연말에 출간된다.

전통문화연구회는 2030년 전후까지 완역해 모두 20권을 펴낼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