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산불 한달] ⑨ '반면교사' 삼는다…20년 지나도 회복 안 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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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상 식생 회복한 것처럼 보이나 토양 등 산불 이전 상태 아냐"
대형산불 주민 트라우마도 여전…진행 중인 피해보상 소송도 고통
대형산불이 잦은 강원 동해안 지역 주민들은 봄만 되면 산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고성지역에서만 1996년 3천762㏊, 2000년 1천210㏊, 2019년 1천261㏊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하는 등 크고 작은 산불 피해가 발생한 지 길게는 20년이 지났지만, 주민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1996년과 2000년 고성 산불 피해는 상당 부분 복구된데다 잡목 등이 뿌리를 내린 산림의 외관상으로는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아직도 산불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강원석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1996년 산불 지역의 경우 외관상으로는 식생이 회복된 것으로 보이나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토양이나 나무 등이 아직 산불 이전 상태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박사는 1996년과 2000년, 2018년 고성군 산불 피해지역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1996년과 2000년 산불피해지 자연 복원지의 경우 시각적으로는 충분히 회복된 것으로 보이나 사면이 슬라이딩 되거나 나무들이 안착하지 못한 곳이 있다"며 "회복상태는 참나무가 많은 계곡부가 가장 양호하고 소나무가 많은 능선과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2000년 산불피해지는 넓은 면적에 연차적으로 조림을 한 탓인지 나무 생육상태가 균일하지 않아 임목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지수화한 지위지수가 70∼80%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수종을 선택해 심는 '인공 조림'에서 자연 스스로가 치유하게 놓아두는 '자연 복원'으로 산불 피해 복원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산불 피해 생태계 식생 복원 기법을 연구한 정연숙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를 보면 자연 복원지에서 나무들이 빠르게 재생하는 양상을 보였다.
강원도 내 산불 발생 후 3년, 6년, 13년, 21년, 27년이 지난 곳을 비교 연구한 결과 조림 복원지는 13년이 되도록 작은 나무층만 형성되고 21년 이후에도 여전히 숲 구조를 갖추지 못했으나 자연 복원지는 같은 기간 전형적인 숲 구조를 이뤘다.
정 교수는 이후 연구를 통해 산불에 대한 저항력과 재생력이 우수한 활엽수가 토양 침식 방지와 자연 방화벽 역할을 하며, 피해목을 베는 행위는 산림 재생을 저해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현실에서는 자연 복원보다는 조림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전자의 경우 복원은 빠른 대신 경제성이 낮은 잡목 위주로 복원이 이뤄지며, 조림은 긴 시간이 걸려도 경제성이 높은 나무들을 가꿀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사유림의 경우 대부분 산주가 조림 복구를 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산불 지역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피해목이 벌채된 후 조림이 이뤄진 상태다.
1996년 고성 산불은 산불 피해지 복원 정책 전환의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산불 피해지 복구는 무상 의무조림 등 인위적인 복원에 치중했으나 고성 산불 이후 자연 복원 유도를 가미한 복구정책으로 전환했다.
이후 2000년 여의도 면적의 약 80배에 달하는 2만3천794㏊가 불탄 동해안 산불 당시 산불피해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가 국가적 논쟁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9개 분야 19개 팀이 참여한 '동해안 산불피해지 공동조사단'이 사회 정책적 요소를 고려한 현지 조사를 거쳐 응급·사방복구, 송이 생산지 복원, 경관복구 등 복원에 사회적 합의를 거쳤으나 이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산불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은 시간과 상관없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불에 탔던 시설물을 철거하고 주택을 신축해 입주하면서 겉으로는 피해가 복구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재민들의 트라우마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0년 산불 이재민인 죽왕면 삼포리 박모(56)씨는 "20년이 지났지만, 그때 기억이 생생해 몸서리쳐지고 봄에 바람만 불어도 겁이나 악몽에 시달린다"며 "다시는 겪고 싶지 않고,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일이니 철저한 예방과 사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보상 또한 산불 피해 주민의 고통이다.
군부대 실화로 인한 1996년과 2000년 산불은 보상 문제가 마무리됐지만 2019년 산불은 정부가 이재민들에게 지원했던 지원금에 대한 구상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전의 피해보상은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해 심적 물적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이재민들은 끊어진 전선에서 발생한 아크로 산불이 났음에도 한전이 진행한 피해조사가 터무니없다며 수용을 거부한 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김경혁 4·4산불비상대책위원장은 "보상이 답보상태인 데다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모두 무죄선고를 받아 이재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며 "산불로 인한 이재민들의 고통은 4년이 돼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대형산불을 겪은 고성군은 2019년 산불 이후 산불의 아픔을 되새기고 반면교사로 삼겠다며 백서를 발간했다.
산불 발생부터 수습·복구까지 전 과정과 함께 수습 대처방안과 미비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산불 초기 주민들의 적극적인 대응에 필요한 산림 인접 마을 소화전 설치 확대와 주택과 산림 간 여유 공간 확보, 내화 수종 조림 확대, 이재민 대피 시설 사전 지정 등을 개선책으로 내세웠다.
/연합뉴스
대형산불 주민 트라우마도 여전…진행 중인 피해보상 소송도 고통
대형산불이 잦은 강원 동해안 지역 주민들은 봄만 되면 산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고성지역에서만 1996년 3천762㏊, 2000년 1천210㏊, 2019년 1천261㏊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하는 등 크고 작은 산불 피해가 발생한 지 길게는 20년이 지났지만, 주민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1996년과 2000년 고성 산불 피해는 상당 부분 복구된데다 잡목 등이 뿌리를 내린 산림의 외관상으로는 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아직도 산불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강원석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1996년 산불 지역의 경우 외관상으로는 식생이 회복된 것으로 보이나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토양이나 나무 등이 아직 산불 이전 상태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박사는 1996년과 2000년, 2018년 고성군 산불 피해지역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1996년과 2000년 산불피해지 자연 복원지의 경우 시각적으로는 충분히 회복된 것으로 보이나 사면이 슬라이딩 되거나 나무들이 안착하지 못한 곳이 있다"며 "회복상태는 참나무가 많은 계곡부가 가장 양호하고 소나무가 많은 능선과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2000년 산불피해지는 넓은 면적에 연차적으로 조림을 한 탓인지 나무 생육상태가 균일하지 않아 임목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지수화한 지위지수가 70∼80%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수종을 선택해 심는 '인공 조림'에서 자연 스스로가 치유하게 놓아두는 '자연 복원'으로 산불 피해 복원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산불 피해 생태계 식생 복원 기법을 연구한 정연숙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를 보면 자연 복원지에서 나무들이 빠르게 재생하는 양상을 보였다.
강원도 내 산불 발생 후 3년, 6년, 13년, 21년, 27년이 지난 곳을 비교 연구한 결과 조림 복원지는 13년이 되도록 작은 나무층만 형성되고 21년 이후에도 여전히 숲 구조를 갖추지 못했으나 자연 복원지는 같은 기간 전형적인 숲 구조를 이뤘다.
정 교수는 이후 연구를 통해 산불에 대한 저항력과 재생력이 우수한 활엽수가 토양 침식 방지와 자연 방화벽 역할을 하며, 피해목을 베는 행위는 산림 재생을 저해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현실에서는 자연 복원보다는 조림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전자의 경우 복원은 빠른 대신 경제성이 낮은 잡목 위주로 복원이 이뤄지며, 조림은 긴 시간이 걸려도 경제성이 높은 나무들을 가꿀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사유림의 경우 대부분 산주가 조림 복구를 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산불 지역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피해목이 벌채된 후 조림이 이뤄진 상태다.
1996년 고성 산불은 산불 피해지 복원 정책 전환의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산불 피해지 복구는 무상 의무조림 등 인위적인 복원에 치중했으나 고성 산불 이후 자연 복원 유도를 가미한 복구정책으로 전환했다.
이후 2000년 여의도 면적의 약 80배에 달하는 2만3천794㏊가 불탄 동해안 산불 당시 산불피해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가 국가적 논쟁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9개 분야 19개 팀이 참여한 '동해안 산불피해지 공동조사단'이 사회 정책적 요소를 고려한 현지 조사를 거쳐 응급·사방복구, 송이 생산지 복원, 경관복구 등 복원에 사회적 합의를 거쳤으나 이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산불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은 시간과 상관없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불에 탔던 시설물을 철거하고 주택을 신축해 입주하면서 겉으로는 피해가 복구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재민들의 트라우마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0년 산불 이재민인 죽왕면 삼포리 박모(56)씨는 "20년이 지났지만, 그때 기억이 생생해 몸서리쳐지고 봄에 바람만 불어도 겁이나 악몽에 시달린다"며 "다시는 겪고 싶지 않고,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일이니 철저한 예방과 사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보상 또한 산불 피해 주민의 고통이다.
군부대 실화로 인한 1996년과 2000년 산불은 보상 문제가 마무리됐지만 2019년 산불은 정부가 이재민들에게 지원했던 지원금에 대한 구상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전의 피해보상은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해 심적 물적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이재민들은 끊어진 전선에서 발생한 아크로 산불이 났음에도 한전이 진행한 피해조사가 터무니없다며 수용을 거부한 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김경혁 4·4산불비상대책위원장은 "보상이 답보상태인 데다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모두 무죄선고를 받아 이재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며 "산불로 인한 이재민들의 고통은 4년이 돼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대형산불을 겪은 고성군은 2019년 산불 이후 산불의 아픔을 되새기고 반면교사로 삼겠다며 백서를 발간했다.
산불 발생부터 수습·복구까지 전 과정과 함께 수습 대처방안과 미비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산불 초기 주민들의 적극적인 대응에 필요한 산림 인접 마을 소화전 설치 확대와 주택과 산림 간 여유 공간 확보, 내화 수종 조림 확대, 이재민 대피 시설 사전 지정 등을 개선책으로 내세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