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윤석열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역대 정권에서 중요 직책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책기획·경제수석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 이명박 정부에선 주미대사를 맡았다. 박근혜 정부에선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사진은 역대 대통령과 한 후보자가 함께한 모습.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관가를 대표하는 통상 전문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협상의 고비마다 협상을 타결로 이끄는 ‘소방수’를 자처했다. ‘경제 안보’를 기치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 후보자를 택한 이유 중 하나도 시장 개방에 대한 그의 소신과 철학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한 후보자의 시장 개방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을 맡았던 2000년 7월의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당시 그는 한국 정부의 자동차시장 개방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겠다며 자신의 관용차를 기존 국산차에서 스웨덴의 ‘사브 9-5’로 바꿨다. 장관급 고위 관료가 외제차를 타기로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앞서 한 후보자는 1998년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 제도)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당시에도 총대를 메고 폐지론을 적극 설파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내던 2006년에도 한·미 FTA 협상의 선결 작업으로 꼽혔던 스크린쿼터 축소(연간 146일→73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한 후보자는 공직사회에서 ‘자기관리 끝판왕’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상공부 과장으로 재직하던 1982년 휴직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84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인 ‘외부 충격, 조정과 성장’에서 한 후보자는 “대외 무역을 제한해 경제를 안정시키는 정책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 경제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이런 소신은 이후 한 후보자가 관여한 1995년 한·미 자동차 협상,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협상, 2000년 칠레와의 FTA 협상 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그는 2000년 중국이 한국의 마늘 수입 규제(세이프가드)에 맞서 휴대폰 금수 등 보복 조치를 취하자 “900만달러어치 마늘 수입을 막자고 5억달러 규모 휴대폰 시장을 버릴 수 없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2년 뒤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 관세를 인하하는 대신 한국이 마늘 수입 규제를 완화하는 이면 합의를 했다는 소위 ‘마늘 협상 파동’ 파문이 일자 “당시 협상을 주도한 사람으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물러났다.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한덕수 전 총리가 내정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책임총리제’ 실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여러 정권이 책임총리제를 표방했지만 대통령 임명직이란 한계 등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책임총리제는 총리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는 체계다. 헌법에 명시된 총리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헌법 87조에 나온 국무위원(장관) 제청권과 해임건의권, 통할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총리에게 분산하는 만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일 제도로 각 정권에서 꾸준히 거론돼왔다.윤 당선인도 이런 이유로 책임총리제를 비롯해 책임장관제 도입과 수석비서관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청와대 통제에서 벗어나 각 부처가 자율성을 갖고 정책을 수립·시행하라는 취지에서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청와대가 부처 위에 군림해 권력을 독점하면서 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고 밝힌 바 있다.다만 책임총리제의 성공 사례는 드물다. 대통령 임명직이란 제도적 한계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총리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 보니 총리가 대통령 뜻에 거스르는 행위를 하기 어렵다는 의미다.김영삼 정부 시절 이회창 총리는 책임총리를 표방했지만 취임 4개월 만에 자진 사퇴했다.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안건을 놓고 김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다. 책임총리를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도 정홍원 전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 모두 대통령 뜻을 이행하는 ‘관리형 총리’에 그쳤다.책임총리를 구현한 사례는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전 총리와 노무현 정부 때 이해찬 전 총리 정도가 꼽힌다. 다만 김 전 총리는 DJP연합이라는 특수한 정치 상황 때문에 총리로서 권한을 적극 행사했다. 이 전 총리도 여당 내 총리라는 점에서 책임총리 역할이 가능했다. 대통령의 전적인 신임이 없다면 책임총리제가 허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전문가들은 책임총리제 실현을 위해선 무엇보다 대통령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새로운 법과 제도 등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미 헌법에 나와 있는 총리 권한을 보장하면 그것이 책임총리제를 시행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헌법상의 총리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국무회의 심의·의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주요 정책 결정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심으로 이뤄진 측면이 적지 않다”며 “국무회의 심의 기능을 복원해 총리와 장관들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윤석열 정부’를 이끌 각 부서 수장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경제 분야에서 손발을 맞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유력한 가운데 최상목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도 최종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부총리를 포함해 내각의 진용을 오는 15일 이전에 발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정치권에서는 추경호 의원을 한 후보자와 호흡을 맞출 부총리 후보로 꼽고 있다. 추 의원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기재부 1차관을 맡아 경제 정책 전반을 경험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을 거쳐 정부와 국회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도 적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수위 내에선 최상목 간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기재부 1차관 출신으로 기재부 내에선 ‘천재 관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추 의원이 부총리로 기용되면 최 간사는 금융위원장에 낙점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개인적 사정 등으로 본인이 고사해 이번 내각 후보에서는 제외됐다고 한 후보자가 이날 전했다.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엔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인 이창양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엔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인수위원인 김창경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가 검토되고 있다.새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할 국가안보실장엔 윤 당선인의 초등학교 친구이자 외교·안보 가정교사로 불리는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이 유력하다. 외교부 장관에는 박진·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법무부 장관으로는 한찬식 변호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색이 옅고, 검찰 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다. 권익환 전 서울남부지검장, 구본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조상철 전 서울고검장 등 전·현직 검찰 인사들도 하마평에 올랐다.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