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은 직급상 상급자에 해당…"미운털 박힐까 우려"
대부분 선거법 저촉…선거에 부당한 영향 미치면 위법
"지지문 대필해줘" 선거철마다 공무원 울리는 정치인들
부산에서 의회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A씨는 선거철이 두렵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A씨는 한 기초의회 의원으로부터 특정 대선 후보의 지지선언문 초안을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공무원이 정치적 의견을 담은 지지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은 선거 중립 위반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A씨는 선출직인 기초의원이 직급상 상급자에 해당돼 그의 지시를 무턱대고 거절하기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A씨는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걸 알지만, 미운털 박히면 직장생활이 힘들어지니 어쩔 수 없었다"며 "선거철마다 비슷한 요청이 들어올 때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 예정자가 공무원에게 자신의 홍보를 부탁하는 일도 있다.

부산지역 한 구청에서 공보담당관으로 일하는 공무원 B씨는 얼마 전 지자체장과 구의원으로부터 선거 관련 자료를 배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출마선언문 등 출마 예정자 자신의 보도자료를 공보관실을 통해 언론에 배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B씨는 특정 후보의 선거 관련 자료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해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비춰질 소지가 있다며 결국 부탁을 거절했다.

또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책 수립을 목적으로 구청에 민감한 구정 정보를 요구하는 현역 정치인도 있다.

기초단체 의원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다는 7급 공무원은 "선거철이면 평소 관심도 없던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며 "정보공개 청구 등 공식 절차를 이용하라고 안내하지만, 이 말조차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지지문 대필해줘" 선거철마다 공무원 울리는 정치인들
1일 지역 정치권과 공직사회 등에 따르면 매번 선거철이면 현직에 있는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자신의 정치 기반을 다질 목적으로 공무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에 직업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상급자나 지방의원의 지시라 거절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현재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직무, 지위와 관련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직업 공무원 입장에선 상부의 지시이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가 들어오면 암암리에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특히 당선이 유력한 후보의 부탁이면 추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역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지시나 요구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현역 정치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지시를 하고, 담당 공무원 역시 직무상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이들의 행위가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증명되면 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업무 연관성, 직무상 행위 등은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에 여러 사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현역 정치인의 이런 행태는 자신의 업무 연관성도 높기 때문에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도 "현직 정치인이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을 어길 정도의 무리한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명백한 선거법을 위반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