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1일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신임 대표 선임을 두고 격돌했다. 이번 사태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추가경정 예산안 등 다른 사안의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박 대표 선임 과정에 어떤 특혜나 비리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거친 발언 쏟아내며 ‘신경전’

인수위와 청와대는 이날 이례적으로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지난 28일 회동 이후 이어지던 화해 무드에도 다시 금이 가고 있다는 평가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비상식적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 의식에 근거한 지적”이라며 확대 해석을 일축했다.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정부 임기 말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을 의도적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을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 수석 부대변인이 “직권남용에 대한 오해의 소지까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한 것을 놓고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향한 경고성 메시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직권남용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 때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된 죄목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양측 간 감정싸움이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이나 추경 예산안 편성을 비롯해 정부 말 인수인계 과정이 삐걱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산은·대우조선 “‘알박기 인사’ 아냐”

산업은행은 100%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경관위)’에서 신임 사장을 선임한 만큼 인수위 측의 ‘알박기 인사’ 주장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2017년 대우조선해양 자구계획 이행 여부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경관위를 발족했다. 경영진 교체 등 막강한 권한이 부여됐다. 출범 당시 금융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었다.

이성근 전 대표 임기가 이달 만료 예정이어서 경관위는 대선 전인 지난 2월부터 후보자 추천을 받는 등 인선 작업을 시작했다. 내부 검토를 거쳐 2월 24일 박두선 당시 부사장을 차기 사장으로 내정했다. 이어 3월 8일 이사회에서 원안대로 의결됐고, 28일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2월 경관위 내정 직후 보고를 받았으며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인선이 이뤄진 만큼 그대로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관위 출범 때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됐던 점을 고려할 때 이 회장이 독단적으로 주총에서 부결시켰다면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낳았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 사외이사 등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정부 방침대로 인선이 보류돼 있다”며 “본사 지방 이전 등 가뜩이나 민감한 이슈가 적지 않은 마당에 산은이 민간 자회사 문제로 인수위와 척질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조선업계에서도 박 사장의 경력이나 역량 면에서 부적절한 인사라는 정치권의 공세에 대부분 고개를 젓고 있다. 박 사장은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부터 생산관리 분야를 맡아온 ‘생산통’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형 선박은 수주 이후 2~3년간 건조되고 인도 시점을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생산관리의 역할이 크다”며 “박 사장이 현 정부 들어 승진 속도가 빨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 분야에선 이미 정평이 나 있던 인물”이라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수주 목표를 41% 초과한 108억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업계에선 지난해 수주한 선박들의 본격적인 건조가 시작되는 시기를 올 하반기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한 물량을 제시간에 만들어 인도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 생산 전문가가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했다.

이호기/이동훈/황정환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