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V와 C. 트라코마티스 복합 감염해야 암 발달 촉진
세포 미세환경 변화로 감염 조직 '리프로그래밍' 진행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논문
"인간 유두종바이러스 혼자서 자궁경부암 일으키지 않는다"

자궁경부암 환자는 바이러스와 세균에 동시 감염된다.

HPV로 많이 알려진 인간 유두종바이러스와 요도염, 직장항문염 등을 일으키는 클라미디아 트라코마티스(C. trachomatis) 균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두 병원체가 함께 암 발생에 관여한다고 의심해 왔다.

바이러스와 세균의 복합 감염으로 퇴행한 세포들이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가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들 병원체의 복합 감염은 세포와 그 주변에 독특한 미세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면 감염 조직의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 즉 유전자 프로그램의 재편이 이뤄져 암의 발달을 자극했다.

이 연구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과학자들이 수행했다.

관련 논문은 24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인간 유두종바이러스 혼자서 자궁경부암 일으키지 않는다"
HPV와 C. 트라코마티스 균은 주로 성적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병원체다.

사실 HPV가 암을 일으킨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실제로 90% 이상의 자궁경부암 종양에서 HPV의 DNA가 발견된다.

요즘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HPV 백신을 권장한다.

그런데 HPV가 혼자서 암 발생에 관여한다고 보는 건 이치에 잘 맞지 않는다.

80%가 넘는 여성이 평생 한 번은 HPV에 감염되지만, 자궁경부암에 걸리는 경우는 2%도 안 된다.

C. 트라코마디스가 자궁경부암의 보조 요인(cofactor)으로 의심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바이러스와 달리 세균은 감지될 만한 자기 흔적을 암세포에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염 세포에 병리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복잡한 돌연변이 과정을 세밀히 확인해야 했다.

연구팀은 기증자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자궁경부 오르가노이드(미니 기관)를 실험 모델로 썼다.

초점은 외자궁경부(ectocervix)와 내자궁경부(endocervix)에 맞췄다.

두 조직 사이의 '전이 구역'(transition zone)이 특히 감염과 악성 신생물(암) 생성에 취약하다.

이를 위해 자궁의 세균 감염을 막아 상부 자성<雌性> 생식관(female reproductive tract)의 기능을 정상으로 유지해야 했다.

"인간 유두종바이러스 혼자서 자궁경부암 일으키지 않는다"
실험 결과를 분석해 보니, HPV와 C. 트라코마티스는 거의 '한 팀'처럼 움직여 숙주 세포에 아주 특이한 리프로그래밍을 유도했다.

몇몇 유전자의 발현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상향 또는 하향 조절되고, 이것이 특정 면역 반응과 연관돼 있다는 게 드러났다.

HPV와 C. 트라코마티스는 또 DNA 손상을 복구하는, 조절 유전자의 핵심 그룹(subset)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HPV와 C. 트라코마티스가 지속해서 줄기세포에 존재할 경우 세포의 유전적 안정성을 저해하고 암의 진행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신드릴라 춤두리 박사(PI)는 "오르가노이드 모델을 이용한 이번 연구는 복합 감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입증했다"라면서 "감염된 조직이 리프로그램되면 암이 발달할 수 있는 세포 미세환경이 조성된다는 걸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