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회사의 브랜딩」저자, 황조은

“네게 있어 좋아한다는 건 어떤 감각이야?”
“회선에 부하를 거는 노이즈인 동시에 프로세서의 처리 능력을 활성화시키는 현상으로 정의합니다. 이 불가해한 사태를 해석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라는 자아의 발생을 인식하는 단서가 되었죠.”
“응, 재미있군. 너랑 얘기하면 기계라는 느낌이 안 들어”
_SF 애니메이션 영화 〈낙원추방〉 중

애니메이션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 ‘프론티어 세터’와 인간과의 대화다. 프론티어 세터는 기계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인공지능 기능을 고도화하던 중 자아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지구 밖에서도 인간이 살 수 있는 우주로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된다. 프론티어 세터가 단순 고철 덩어리가 아닌 인간성이 느껴지는 존재로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가?

바로 이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와 목표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회사로 가져와보자. 기업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브랜드가 되는 과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저 법인으로 등록하여 사무실을 꾸리고 제품만 판매하면 가능한 것일까? 혹은 제품 판매량만 늘어나면 사랑 받는 회사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쉽게 해결할 문제라면 그 많은 브랜딩 전문가와 경영 컨설턴트들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업도 인격을 가진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기업의 철학이 곧 인격을 결정짓는다.

이 회사가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을 핵심가치는 어떠한지, 회사를 만드는 사람들의 인재상은 어떠한지 등의 철학과 원칙 말이다.

기업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의 기업철학을 소개한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걸린 기업철학의 문장들이 실제 회사 운영에서는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저 홈페이지나 회사소개서에 내걸 장식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볼보는 ‘안전’과 ‘사람’을 최우선하는 문화를 강조한다. 만약 갑자기 볼보에서 안전을 무시하고 스피드만 추구하는 자동차를 출시한다면 도무지 어색한 전개이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셔터스톡)
볼보는 ‘안전’과 ‘사람’을 최우선하는 문화를 강조한다. 만약 갑자기 볼보에서 안전을 무시하고 스피드만 추구하는 자동차를 출시한다면 도무지 어색한 전개이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셔터스톡)
기업철학이 차별화된 기업 브랜딩으로서 조직의 성장을 독려하는 요소가 되려면,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가 병행돼야 한다.

첫째, 기업철학은 회사의 정체성에 맞는 철학으로 정해야 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좋은 철학을 찾다보면 분명 멋들어진 표현이 담긴 미션과 핵심가치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진짜 우리 회사의 정체성에 딱 들어맞는 메시지인지 따져봐야 한다. 있어 보이는 문장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기업철학은 마치 고기와 생선을 좋아하는데 ‘비건을 지향한다’고 외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둘째, 기업철학은 조직문화와 회사 운영에서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타트업에서는 1년 만에 직원이 10명이었다가 100명으로 늘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성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조직의 규모와 커져가면서도 기업철학이 꾸준히 유지시키는 일이다. 직원 수가 10명이던 시절에는 서로 의견과 가치관이 달라도 조금의 논의만 거치면 쉽게 해결 가능하지만, 100명 규모를 넘어서면 개별 면담과 논의로는 회사의 방향성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

직원의 규모와 관계없이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회사의 목표와 방향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소통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철학은 ‘우리는 왜 이 목표를 실현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원칙으로 일해야 하는가?’를 계속 상기시켜줄 것이다.

당장 회사의 미션, 핵심가치를 떠올리라고 해서 피부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갑작스럽게 기업 브랜딩 회의를 연다고 해서 몇 시간 만에 정답을 내리기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매 순간마다 기업의 존재 이유와 목표를 고민하고 작은 의사결정에도 적용해보는 노력을 해본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진 기업인지 뚜렷해질 것이다. 이미 창업가는 정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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