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남녀갈등 풀려면 성별 경계부터 허물어라
인류는 대략 1만 년 전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성의 위상이 올라갔다. 수렵·채집 시절엔 사냥에 실패할 때가 많아 남자가 큰소리를 치지 못했지만, 농사는 확실히 힘이 센 남성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여성 선택》의 저자는 이때를 기점으로 ‘남성 선택’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원래 자연은 ‘여성 선택’이 우위였다.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모종의 성과를 보여줘야 했고, 암컷이 선택했다. 수컷이 불리했다. 여성 선택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수컷 가운데 대다수는 짝지을 암컷이 전혀 없거나 매우 드물게 암컷과 짝을 짓는다는 점이다.

인간 사회도 원래 여성 선택 중심이었지만 정착 생활 이후 정반대로 바뀌었다. 저자는 “문명은 남자가 남자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자는 여자의 재산 소유를 거부하고, 집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육아에 전념하게 해 공공 영역에 진출할 기회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결혼 제도로 여자는 남자에게 100% 종속되는 상황에 몰렸다. 확실한 피임약의 부족으로 여자는 임신을 막을 수 없었고, 이것을 남성들은 환영했다. 이후 남자는 여자의 욕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외부 세상의 구조, 즉 오늘날까지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무역·경제·정치·노동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책은 지적한다.

피임약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돌려줬다. 임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여성은 남성 위주의 시스템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최근 남녀 갈등이 커지는 배경 중 하나다. 거의 합의를 볼 수 없는 욕구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순수한 형태의 여성 선택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문명이란 것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남자의 욕구와 여자의 욕구를 동일하게 고려하는 새로운 문명 말이다. 남성 중심 문명은 공격성과 경쟁을 전면에 드러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문명은 이 같은 문제들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선 다소 주장이 모호하다. 저자는 집 안이라는 내면의 세계에서 여자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국가, 계층, 성별 등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보존하고 유지하는 노동(돌봄 노동)과 생산적인 노동이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지위를 통해 보상할 때에야 비로소 여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사회 건설에 진정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