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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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은행이 부리고 공은 주인이 가져간다는 건 그렇다 쳐도, 욕까지 먹으라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A은행 임원)

청년들의 재산 형성을 돕는다는 청년희망저축 가입 둘째 날인 23일. 은행 전화상담실에선 '심사 중 화면만 30분째인데 해결이 안 되나', '언제쯤 정상적으로 가입할 수 있느냐'는 소비자 항의가 빗발쳤다. 전날 '3월 4일까지 희망자 모두가 가입할 수 있다'는 정부 발표에도 은행 앱, 창구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청년희망적금은 2년간 월 50만원 한도로 적금을 붓는 청년들에게 은행이 연 5~6%이 이자를 지급하고, 정부가 최대 36만원의 저축 장려금을 지원하는 '반관반민' 저축이다. 만 19살 이상∼34살 이하 청년 가운데 전년 총 급여가 3600만원(종합소득금액 2600만원) 이하라면 가입할 수 있다. 신청자의 소득을 확인하는 절차는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이 맡고 있다.

서금원 서버에서 자격 확인이 지연되고 있고, 그 때문에 가입이 밀리고 있다는 게 은행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서금원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 최근 몇몇 은행에서 소비자들에게 '지연을 양해해달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서금원은 '메시지에서 서금원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내용을 빼달라'고 항의했고, 은행이 해당 내용을 빼고 메시지를 재발송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서금원은 지연 문제가 언제쯤 해결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서금원) 서버 문제는 아니다"라고 발뺌했다. 은행 전산 담당자에게 서금원 측 답변을 전하자 그는 "매일 수백만명의 접속을 가정하고 구축된 은행 시스템과 평소 사용자가 한정돼있는 서금원 전산 중 무엇이 문제일까"라고 되물었다.

준비 부족에 대한 지적과 신청자들의 혼란 중에서도 정부는 '공'을 챙기기엔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청년희망적금 가입 첫날인 21일과 다음 날인 22일에 벌어진 일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은행들이 당국에 줄곧 '전산 마비가 예상된다'고 지적했음에도 당국에선 '21일(출시 첫날)만 잘 넘겨보고 22일엔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답했었죠. 아무 대책이 없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22일 문재인 대통령 발언(국무회의에서 "지원 인원이 한정돼 가입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없도록 앞으로 2주간 신청하는 청년들의 가입을 모두 허용하고 지원할 것")이 나왔고, 이후 3월 4일까지 전 가입자에게 문을 열어주라는 지침이 은행에도 내려왔습니다." 모든 가입자에게 문을 열어주라는 대통령 한 마디에 은행들은 가입자 전원에게 연 5~6%대 이자를 지급해야한다. 대상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분담해야하는 은행들과의 논의는 전혀 없었다.

최근 가입자 현황에 대해서도 철저한 '함구령'이 내려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가입자가 몇 명인지, 어느 정도인지 절대 말하지 말고, 이를 밝히지 말라고 한 것도 외부에 발설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선 청년들의 이목이 쏠린 정책금융 상품의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은행들에 각각의 상품 현황을 밝히지 말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희망적금은 설계 초기부터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재정 지출'이라는 비판이 컸던 상품이다. '청년을 돕는다'는 대의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야당도 큰 반대를 하지 못했다. 왜 직전년도 3600만원이 소득이 기준이어야 하는지 이유도 불분명하다. '청년에겐 용돈보다 일자리를' 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선심을 펴기로 했다면 준비라도 철저히 했어야 하고, 책임을 확실히 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가장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인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