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삼식 작가 "결국은 마주할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
젊은 소리꾼 김준수·유태평양, 늙은 리어와 글로스터 연기
내달 17∼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창극으로 탄생한 셰익스피어 비극…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이 창극으로 다시 태어난다.

국립창극단은 다음 달 17∼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창극 '리어'를 초연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리어와 그의 세 딸, 글로스터 백작과 그의 아들들 등 두 가족의 비극을 다룬다.

국립창극단은 이 고전을 우리 고유의 언어와 소리로 새롭게 풀어낸다.

삶의 비극과 인간에 대한 원작의 통찰을 '물(水)의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노자 사상과 엮어낼 예정이다.

시간이라는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2막 20장에 걸쳐 그려낸다.

극본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23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리어는 우리가 모두 잊거나 피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라며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면 이 이야기는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집필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리어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가장 잔혹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노자에도 '세계는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어질지 않다'는 구절이 있다.

도덕과 윤리가 너무 지나치면 억압이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읽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삶의 참모습은 명명백백하지 않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그곳에 있다고 노자도 생각했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노자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물이 이야기의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창극으로 탄생한 셰익스피어 비극…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배 작가의 극본은 한승석과 정재일의 음악을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작창가 한승석은 증오, 광기, 파멸 등의 정서를 담은 소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경기민요를 장면에 맞게 차용해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작곡을 맡은 정재일은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진 음악과 가상악기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사운드를 조합해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한승석 음악감독은 "증오, 광기, 파멸, 음모, 배신 같은 정서를 판소리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음악적으로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장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밝혔다.

무대는 고요한 가운데 생동하는 물의 세계로 꾸며져 거대한 자연 앞에 놓인 연약한 인간의 존재를 보여준다.

무대에 수조를 설치해 20t의 물을 채우고,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의 변화를 통해 작품의 심상과 인물의 정서를 드러낸다.

이태섭 무대디자이너는 "잔잔했던 물이 흔들리고 반사되고 왜곡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다"면서 "배우들이 물을 튀기기도 하는데 자연이 결코 어질지 않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창극으로 탄생한 셰익스피어 비극…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고정관념을 깬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이지만 30대 초반의 젊은 소리꾼 김준수(31)와 유태평양(30)이 각각 리어와 글로스터역을 맡는다.

정영두 연출은 "젊은 단원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이들의 소리와 연기를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기대감을 충족시킬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김준수도 "처음에 리어를 제가 하는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리어를 만나면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보다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생각하면서 관객의 공감과 이해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민은경은 코딜리어와 광대를 오가는 1인 2역 연기를 펼친다.

이외에 이소연, 왕윤정, 이광복, 김수인 등이 무대에 오른다.

창극으로 탄생한 셰익스피어 비극…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