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우크라이나 사태…과연 '찻잔 속 태풍'에 그칠까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은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짚어볼 수 있다. 이해 당사국들이 모두 참가하는 전면전이 발생하는 ‘비관론’과 민스크 협정 및 핀란드식 중립화 해법에 따라 다시 평화를 찾는 ‘낙관론’, 그리고 두 시각의 중간지대인 ‘회색론’으로 국지전이 발생하는 경우다.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으나 국가 간 전쟁 가능성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돈의 흐름을 보면 의외로 커다란 변동이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처음 불거졌던 작년 11월 말 이후 달러인덱스는 ‘96’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올 1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 직후 1210원까지 오르다 지난 주말 1195원으로 하락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우크라이나 사태…과연 '찻잔 속 태풍'에 그칠까
미국을 중심으로 주가와 국채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보다는 Fed의 급진적인 ‘출구 전략’에 따른 영향이 더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라면 안전 자산의 상징인 국채 가격은 올라가야 한다. 과거 키프로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 금융시장의 움직임이다.

찻잔 속의 태풍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국토 면적 등과 같은 하드파워 위상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최악의 경우 전쟁이 일어나 우크라이나가 디폴트에 빠지더라도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Fed가 나서지 않는 것도 이런 판단에서다.

하지만 찻잔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뜨거운 커피가 담겨 있을 땐 찻잔을 젓는 사람이 조금만 잘못해도 커피가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뜻하지 않게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국가들이 어떻게 이해관계를 조율할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뜨거운 커피 그 이상이다. 지리적 특수성과 군사적 요충지로 ‘유라시아 화약고’라 불릴 만큼 분쟁이 잦은 곳이다. 경제적으로도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부존 자원 등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받아왔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고민해온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중시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은 앞으로 더 뜨거워질 수 있는 논쟁 거리다. 주 책임자가 될 유럽중앙은행(ECB)은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키프로스 사태에 적용했던 ‘베일 아웃(bail out·구제금융)’이 아니라 ‘베일 인(bail in·손실참여)’ 방식을 채택할 확률이 높다.

베일 아웃은 국가, 은행 등이 지급 불능에 처해 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베일 인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예금자나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전자는 눈에 익을 만큼 널리 사용돼 왔으나 후자처럼 은행 예금자에게 손실을 지게 하는 사례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베일 인 방식이 채택되면 독일과 러시아 간 갈등이 또 한 차례 표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방식을 주도할 국가는 독일이고 우크라이나 은행에 예금을 많이 한 나라는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독일 입장만 강조되다간 우크라이나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해 유럽 위기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도 자유롭지 못하다. 은행과 예금은 안전하다고 인식돼 왔지만, 베일 인 방식이 채택되면 앞으로는 어떤 은행을 선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은행을 잘못 선택해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이들 은행에 가입한 예금자는 자신의 돈을 못 받는 경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정치·군사적으로 전쟁이 발생하면 금융 분야에서 또 한 차례 전쟁이 치러질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선택할 것인가? 오히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이해 당사국들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새플리·로스의 ‘공생적 게임이론’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