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멈춰세운 튀니지 대통령, 사법독립 관장 헌법기구도 해체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어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킨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대통령이 이번에는 사법권독립 업무를 관장하는 최고 헌법기구에까지 칼을 뽑았다.

6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최고 사법 위원회(CSM) 해체를 선언했다.

CSM은 사법권의 원활한 기능과 재판부 독립을 감독하기 위해 지난 2016년에 신설된 헌법 기구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사법권 독립을 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CSM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CSM은 과거의 유물이며, 위원회 내부에서 매관(돈을 받고 관직을 파는 행위)이 성행한다.

일부 판사들이 받는 돈의 규모는 엄청나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비판했다.

또 사이에드 대통령은 CSM이 지난 2013년 발생한 좌파 지도자 초크리 벨라이드 암살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재판을 지연시킨다면서, CSM을 대체할 새로운 사법 감시기구 구성을 위한 임시 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인권 분야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판사위원회는 이런 대통령의 주장이 확인된 바 없다면서, CSM 해체는 불법이며 위헌이라고 반박했다.

또 CSM 해체는 삼권분립의 종말이라고 국제사법위원회는 덧붙였다.

반면, 튀니지 변호사협회의 이브라힘 부데르발라 회장은 "새로운 명령이 내려지면 우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튀니지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쓴 '아랍의 봄' 민중 봉기의 발원지로 중동에서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았다.

아랍의 봄 이후 처음으로 2018년 5월 지방선거가 실시됐고, 2019년 10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이에드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갈등 속에 국민의 불만이 쌓여왔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닥치면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헌법학자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히셈 메시시 전 총리를 전격 해임하고 의회를 멈춰 세웠다.

주요 정당들은 대통령의 돌발행동을 '쿠데타'로 규정하며 반발했지만, 정치권에 불만을 품은 일부 국민은 그의 조치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헌법을 무시한 대통령의 무기한 '칙령 통치'(rule by decree)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정치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의 첫 여성 총리를 임명하고 10월에는 새 내각을 출범시켰으며, 올해 7월 개헌을 추진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