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게임 IP 가치 20년 지켜낸 비결
한국 게임 시장은 2020년부터 모바일 게임이 주도하고 있다. 매출 기준으로 국내 전체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의 비중이 2020년 5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달 내놓은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20조422억원으로 추정된다. 1년 전보다 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모바일 게임 매출은 전년보다 9.5% 늘어난 11조8654억원에 달한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0%에 육박한다. 그만큼 국내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 가장 두각을 보이는 업체는 엔씨소프트다.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상위 5위권(24일 구글 앱 장터 기준)에 4개나 이름을 올렸다. 1위 ‘리니지W’, 3위 ‘리니지M’, 4위 ‘리니지2M’, 5위 ‘블레이드앤소울2’ 등이다.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게임에서는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리니지 IP(지식재산권)를 적극 활용하면서 모바일 게임 강자가 됐다.

상황 1 오래된 게임 IP
도전 1 오히려 원작에 충실

국내 게임업계에서 엔씨소프트의 입지는 독특하다. 자체 개발한 게임이 주력이다. 인기 게임을 개발한 게임사를 인수하면서 회사를 키우지 않았다. 외부 IP을 활용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엔씨소프트가 개발하고 키운 IP로 승부를 걸었다. 그것도 모두 MMORPG라는 하나의 게임 장르에 집중했다.

다른 게임업체들이 외부 게임을 유통하거나 다양한 장르로 수익을 다각화할 때 엔씨소프트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등 엔씨소프트가 연이어 내놓은 게임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배경 중 하나다.

급성장하던 엔씨소프트가 주춤거렸다. 2012년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400명이 회사를 떠났다. 국내 게임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모바일 게임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 모바일 게임을 앞세운 넷마블의 매출은 2015년 엔씨소프트를 추월했다.

엔씨소프트는 자사 대표 게임 IP 리니지를 앞세워 모바일 게임 시장을 공략했다. 당시 게임업계에서는 리니지 IP가 모바일에서는 크게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엔씨소프트는 2017년 PC 게임 리니지를 모바일로 그대로 구현한 리니지M을 내놨다.

이용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기사’, ‘요정’, ‘마법사’, ‘군주’로 대표되는 클래스(캐릭터)와 혈맹(이용자 커뮤니티), 공성전 등 원작 IP의 주요 콘텐츠를 모바일로 옮겼다.

마케팅도 이런 게임 내용에 집중했다. 기존 PC 게임 리니지 사용자를 겨냥한 광고 영상을 제작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260만건을 넘어섰다. 리니지M은 출시 직후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1위에 올랐다.

상황 2 또 ‘리니지’라는 우려
도전 2 글로벌 시장 동시 공략

지난해 상반기 엔씨소프트에 대한 위기설이 잇따라 나왔다. 오랜 기간 모바일 게임 매출 1위 자리를 지켰던 엔씨소프트가 1위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리니지M과 리니지2M은 한동안 1·2위 자리를 고수했다. 리니지M은 출시 이후 거의 대부분 기간 1위를 지켰다. 두 게임의 인기는 압도적이었다. 다른 게임사들은 신작 모바일 게임 목표를 한동안 3위로 잡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게임처럼 리니지M 시리즈 이용자와 매출도 줄기 시작했다. 넷마블이 작년 6월에 출시한 ‘제2의 나라’가 모바일 게임 1위에 올랐다. 리니지M 시리즈가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2017년 6월 이후 4년 만이다. 이후 리니지M은 1위에 복귀해 명예를 되찾는 듯했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에 1위를 내줬다.

엔씨소프트는 이번에도 리니지 IP로 승부수를 던졌다. 작년 11월 ‘리니지W’를 내놨다. 이전과 달리 처음부터 국내와 해외 시장에 동시에 출시했다. 광고, 쇼케이스 등 모든 영상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자막을 제공해 국가에 상관없이 게임에 참여하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마케팅 활동에 힘입어 사전예약 1300만명을 돌파했다. 사전 다운로드는 8개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리니지W’는 출시 직후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1위에 올라섰다. 국내 모바일 게임 출시 첫날 매출 기록도 갈아치웠다. 엔씨소프트가 1위 자리를 되찾아온 것은 7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발할라 라이징’에 빼앗긴 지 넉 달여 만이다.

리니지W는 출시 첫날 매출에서도 국내 게임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업계에서는 160억~170억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출시 후 일주일 동안 평균 일 매출 120억을 웃돌았다. 9일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을 넘겼다.
인기 게임 IP 가치 20년 지켜낸 비결

상황 3 치열해진 모바일 게임
도전 3 모든 마케팅 수단 동원

엔씨소프트는 게임을 내놓을 때마다 흥행에 성공했다. 리니지라는 인기 IP 덕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결코 달성하기 쉬운 성과는 아니다. 구글, 애플 등 모바일 게임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2020년에 신고한 신규 모바일 게임 수는 총 29만1828개다.

구글의 비중이 60%(게임물관리위원회) 정도고, 구글에 출시되는 게임은 다른 유통채널에도 대다수 중복 출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시기 국내에 나온 신규 모바일 게임은 17만 개 수준으로 추정된다.

빅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 시장 분석 서비스인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0년 국내에 출시된 신규 모바일 게임 중 매출 ‘톱10’ 목록(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에 한 번이라도 이름을 올린 게임은 18개다. 전체 신규 모바일 게임의 0.01% 정도다. 그만큼 ‘대박’ 게임을 내놓기 어렵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콘텐츠 강화 외에도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해왔다. 엔씨소프트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가 광고 영상에 출연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광고를 시청한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전하고 엔씨소프트에 대한 친숙한 이미지를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는 유튜버, 인플루언서, 연예인 등을 동원한 마케팅 방식도 적극 활용했다. 리니지W의 글로벌 광고 영상에 해외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존 스노우 역할을 맡은 배우 키트 해링턴을 주인공으로 출연시켰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유튜버와 협업을 통해서 리니지W의 국가 간 경쟁 구도가 게임 내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며 “이용자들이 보다 큰 규모의 전투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고 다양한 게임 내 스토리와 콘텐츠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리니지W의 경우에는 해외 인기 엔터테인먼트 IP와 협업도 마케팅 측면에서 눈에 띈다. 엔씨소프트는 일본의 인기 만화인 ‘베르세르크’를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의 유명 IP와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게임은 영화와 같은 대표적인 흥행산업이다. 국내외 매출 상위 게임사들은 오랜 기간 동안 수백억원을 투자해 게임 한 개를 겨우 만든다. 블럭버스터 영화처럼 출시 직후 매출이 최종 성과(매출)를 가른다.

그래서 영화처럼 인기 IP를 앞세운 게임들이 많다. 미션임파서블 등과 같은 블럭버스터 영화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 것은 영화 개봉 전부터 수많은 관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리니지, 던전앤파이터, 세븐나이츠 등 팬이 많은 인기 IP를 활용한 게임들이 잇따라 나왔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라는 IP의 가치를 20년 이상 지켜냈다. 게임 흥행 성적이 근거다. 게임 이용자가 리니지에서 기대하는 것을 재현했고, 이전 게임보다 무엇이든 개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엔씨소프트 마케팅의 주요 포인트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또 리니지냐”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오래된 IP의 게임을 기대작으로 만드는 마케팅 방법이다.

김주완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tvN의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가 히트한 적이 있다. 이 중 “응사”라고 불렸던 “응답하라 1994”는 당시 케이블 TV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필자 역시 90년대 중반 대학 생활을 보낸 추억 때문인지 응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JTBC에서 방영되었던 “슈가맨” 역시 매회 추억의 가수들을 소환했다. 시청자들은 과거 한시대를 풍미했던 잊혀진 가수를 찾아내고 그 시절의 추억에 다시 빠져 들었다. 이외에도 시청자의 추억과 기억에 어필하는 드라마, 예능 프로는 너무 많다. 추억, 복고, 레트로는 매번 시청자를 사로잡는 단골 소재이다.

기업들도 고객의 추억에 어필하는 상품, 서비스를 내놓을 때가 있다. 롯데제과의 ‘레트로 과자종합선물세트’, 뚜레주르의 ‘엄마랑 장볼 때 먹던 그때 그도나쓰’, 동서식품의 '맥심 커피믹스 레트로 에디션' 등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옛날 감성으로 디자인된 머그컵, 블루투스 스피커 등으로 성공한 기업도 있고, 어떤 기업은 과거 히트했던 추억의 광고를 리메이크해서 내보내기도 한다.

마케팅에서는 이처럼 소비자의 추억, 향수에 어필하는 방식을 “노스탤지어 마케팅(Nostalgia marketing)”이라고 한다. 노스탤지어 마케팅은 소비자의 ‘장기기억’ 속에 있는 ‘사건적 지식(episodic knowledge)’을 자극하여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엔씨소프트 리니지M의 성공 배경에도 ‘추억’이 있다. 1998년에 출시된 리니지1을 즐기던 현재의 30~40대 소비자들은 리니지M을 통해 자신들이 10대, 20대 시절 리니지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과거 PC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던 장면이 떠오르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학창 시절 추억들도 함께 되살아난다. 일부 유저들이 리니지의 그래픽과 인터페이스 등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니지 IP의 힘과 추억은 여전히 강력했다.

물론 추억만으로 게임 유저를 모을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성공에는 확실한 가치제안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그래픽의 품질, 편리한 인터페이스의 게임이라도 그 게임만의 가치제안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리니지는 기본적으로 “성취감, 정복감, 권력”과 같은 차별화된 가치제안을 꾸준히 전달하면서, 유저들의 추억도 함께 성공적으로 자극했다고 판단된다.

다만 ‘지난친 과금 유도, 현질, 린저씨’ 등 최근 일부 유저들에게 형성된 부정적 인식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또한, 현재 게임 산업이 메타버스라는 또 다른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주의해야 한다.

과거 PC기반의 싸이월드가 ‘모바일 전환’이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듯이, 게임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기존의 승자도 하루 아침에 loser가 될 수 있다. 엔씨소프트 역시 강력한 리니지 IP를 메타버스 환경에서 어떻게 새롭게 활용하느냐가 향후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게임은 소비자가 직접 경험을 하기 전에는 그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경험재다. 또한 게임은 케이스스터디 기사가 지적한 대로 흥행산업에 속한다. 게임의 이러한 특성은 영화와 비슷하다. 영화도 경험재이면서 대표적인 흥행산업이다.

게임이나 영화같은 경험재를 구매할 때 소비자는 브랜드를 활용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기 전에 그 상품의 품질을 알 수 없으므로 불만족스러운 상품을 선택하는 리스크를 피하려고 익숙하고 검증된 브랜드를 참고하는 것이다.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만족스러운 브랜드라면 일단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래서 정보탐색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에 끌리게 된다.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게임에서는 후발주자였지만 리니지라는 오래된 게임 IP(지식재산권)를 적극 활용한 것은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겨냥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007시리즈’처럼 전작의 흥행으로 브랜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인기 소설, 웹툰 같은 원작이나 배우, 감독 등이 브랜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과거에 만족했던 브랜드에 일단 호감을 갖는 것은 해당 브랜드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과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바로 소비자의 기대불일치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기대불일치 이론(Expectation Disconfirmation Theory)에 따르면 먼저 소비자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대를 갖게 되고, 이어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뒤 그 상품이나 서비스의 성과를 인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예측했던 기대와 인지한 성과를 비교해 성과가 기대보다 높으면 만족하고 그 반대로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족하게 된다.

국내에서 개봉한 61편의 영화를 분석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는 영화 개봉 첫 주말 예매율로 기대수준을 측정하고 관객 평점 변화와 좌석 점유율 변화로 기대불일치를 측정하였다.

즉 개봉 전 관객 평점 평균과 개봉 후 일주일 동안의 관객 평점 평균의 차이 그리고 개봉 첫 주말 좌석 점유율과 둘째 주말 좌석 점유율을 비교해 기대불일치가 발생하는지를 본 것이다.

연구결과, 개봉 전 기대수준이 높을수록 최종 흥행 성적이 높게 나타나지만 기대불일치는 최종 흥행성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대수준과 기대불일치가 흥행에 미치는 효과가 상반된다는 것이다.

이에 기반하면 흥행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대수준은 높이고 기대불일치를 낮추는 전략이 필요한데 이게 쉽지가 않다. 이 연구에서 밝히고 있는 또 다른 결과 때문이다. 개봉 전 기대수준이 높을수록 개봉 후 기대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고 그로 인해 최종 흥행 성적이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봉 전 기대수준을 높이는 전략이 최종 흥행 성적에는 도리어 부담이 되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인 것이다. 개봉 전 시장의 기대수준과 기대불일치 간의 이러한 상충관계를 고려한다면 마케팅 담당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대관리를 통해 기대수준과 기대불일치 정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출시 전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여 게이머들의 기대수준을 높이고, 실제로 그 게임을 경험한 게이머들이 리니지에서 기대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기대관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대불일치를 최소화했다는 점이 흥행의 비결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기대수준은 부정적 기대불일치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흥행산업 마케팅에서 소비자들의 기대수준을 높이는 전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기대불일치를 최소화하는 기대관리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마케터를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
■ 한경 CMO 인사이트 구독하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5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