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모임도 '언택트·순차 방문'
"코로나 이전 명절에 비해 매출이 절반 정도네요.

"
설 전날인 31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임태건(53)씨는 매대 앞을 서성이며 "선물용 세트를 준비했는데 거의 안 나간다"고 토로했다.

대화 내내 임씨는 "망했어요"라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설 전날은 전통시장에 찾아오는 '1년 장사' 대목 중 하나지만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여파로 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해 장사에 나선 상인들은 예년과 비교해 턱없이 적은 매출에 한숨을 내쉬었다.

영천시장에서 족발 가게를 운영하는 성성란(56)씨는 "인터넷 주문 때문인지 평상시보다 장사가 안된다"며 "평소보다 매출이 20%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성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족발을 사가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성씨는 "전남 영광이 고향인데 코로나도 걱정되고 내일 영업도 해야 해서 가족을 만나러 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량리 청과물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과일 도매업을 하는 유상열(70)씨는 "분위기는 눈으로 보는 그대로다.

사람이 없다"며 3일 전부터 인적이 드물었다고 전했다.

유씨는 "10년 전 매출이 100이라고 하면 지금은 10 정도
"라면서 "기업들이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지만 서민이 느끼기에 경제는 바닥"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동시장에서 보리굴비 전문점을 운영하는 손장식(56)씨도 "작년에는 재난지원금이라도 있어서 어느 정도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다"며 "이틀 전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고 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가게들도 보였지만 상인들은 오미크론 여파로 일거리가 더 많아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영등포 전통시장에서 부침개를 파는 40대 박모씨 가게에는 차례에 올릴 모둠전을 둘러보고 집어 담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박씨는 "평소보다 4∼5배 더 많이 준비했다"며 "설 차례 지내기 전날 점심까지가 많이 팔리는데 날이 추워서 그런지 예상보다는 사람이 적다"고 전했다.

박씨는 "원래 소쿠리에 널어놓고 식혀 그때그때 포장하는데 오미크론이 걱정돼 미리 랩으로 포장해놔야 한다"며 손이 더 많이 간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에서는 가족끼리 먹을 소포장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잠실에 위치한 대형마트의 전 진열대에서 근무하는 60대 박모씨는 동태전, 동그랑땡, 삼색나물, 잡채가 잘 나간다며 "제일 하기 힘든 음식들이다.

평소보다 수량을 더 많이 준비했는데 소량 포장을 해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금천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송명호(35)씨는 "코로나 이전보다는 판매가 수월하진 않다"며 "예전에는 대량구매 고객이 많았는데 그런 게 줄었다"고 했다.

송씨는 "고기 같은 경우 예전에는 충동구매도 많았는데 이제는 꼭 필요해서 구매하는 목적 소비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딸기를 고르던 주부 박옥미(61)씨는 "원래는 온 가족이 다 모였는데 이번에는 가족들이 교대로 부모님을 방문하기로 했다"며 "딸네 가족이 왔다가 떠나면 아들 가족이 오는 식"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어차피 와도 한 끼 먹고 헤어지니까 음식을 미리 해놓고 매끼 조금씩 나눠 먹기로 했다"며 "갈비도 비싸서 음식도 간단히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장을 보러 나온 나선미(58)씨도 "예전에는 명절 음식을 여러 가지 했었는데 올해는 전을 세 가지만 하고 고기를 구워 먹을 예정"이라며 찹쌀가루를 집어 들었다.

이어 나씨는 "본가는 전라도인데 코로나 확진자가 많은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시골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 찾아가기 조심스럽다"며 "본가에 형제들이 모여 살고 있어서 영상통화로 부모님과 인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