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틀에 갇힌 사회학계, '청개구리' 같은 안목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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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학사 정리한 정수복 박사…"사회학은 근본 다루는 학문"
"우리만의 담론 제시할 시점…사회 전체 보는 지식인 살아나야" 사회학자 정수복(67) 박사의 서울 종로구 연구실 책장에는 '청개구리'라고 적힌 자그마한 카드가 있다.
책상 앞에서 작업을 하다 고개를 들면 이 카드가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정 박사는 지난 18일 연합뉴스 기자에게 "학자들이 담을 쌓고 자기가 배운 학파에 소속돼 좁은 틀 안에서만 연구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며 "조그만 주제를 놓고 고민하는 파편 같은 연구를 하지 말고 우물 밖으로 나가 다른 식으로 보는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20세기에 받아들인 서구 학문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파악하려면 총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며 "학문의 역사, 즉 학사(學史) 연구가 이뤄져야 한국 학계의 위치와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정 박사는 최근 한국 사회학 역사를 정리한 4권짜리 책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를 펴냈다.
한국 사회학 100년 통사를 돌아보고, 중요한 사회학자 11명을 뽑아 평전처럼 소개했다.
어려울 듯한 학술서이지만,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
그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역사학·철학·문학에 두루 흥미를 느꼈다.
귀국해서는 학계에 순조롭게 진입하지 못하고 시민운동과 언론 활동도 했다.
정 박사는 이 같은 독특한 이력 때문에 자신을 사회학계 '이방인'으로 규정한다.
"사회학사라는 게 사회학만 공부해서는 쓸 수가 없어요.
다른 학문을 배우고 여러 일을 한 경험이 집필에 도움이 됐죠. 이번 책에 실린 참고문헌이 2천200개 정도 되는데, 사회학 외에 다른 사회과학 서적과 인문학 논저도 많이 인용했습니다.
"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나 전성우 한양대 명예교수 같은 동료 사회학자들이 장대하고 방대한 저작이라고 호평한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는 곡절 끝에 빛을 봤다.
정 박사는 "사회학자 대여섯 명에 관한 글을 쓰고 나니 너무 지쳐서 출판사에 출간 의뢰를 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에 원래 계획대로 11명을 다뤘고, 그 과정에서 4∼5년이 더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완성한 원고를 학술과 교양 서적을 내는 출판사 여러 곳에 보냈지만, 역시나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다행히 서평 모임을 했던 푸른역사와 연이 닿아 책이 만들어졌다"고 털어놨다.
정 박사는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읽으며 사회학사 저술 활동에 매달렸다.
먼지 쌓인 논문을 찾아 하나하나 탐독하고 정리하는 일을 반복했다.
사회학자보다는 문헌을 파고드는 역사학자의 작업에 가까웠다.
그는 사회학이 근본을 다루는 학문이자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주류 사회학이 실증주의와 경험주의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지만, 분단 시대와 민중 연구에 천착한 비판사회학이나 한국 역사에 주목한 역사사회학도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며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책에 등장하는 사회학자 중에는 강단에 머물지 않고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인물이 여럿 있지만, 최근에는 '사회학의 위기'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사회학자들의 사회 참여가 뜸한 편이다.
정 박사는 "대학 체제가 변하면서 학자들이 현실적으로 응용할 수 있고 당장 쓸 수 있는 지식만을 생산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며 "기초 학문과 소양은 간과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회학이 위기에서 벗어날 해결책으로 '재미'와 '교류'를 꼽았다.
사회학이 보건, 복지, 여성, 가족, 환경 등 여러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학자들이 좋은 사회학 교재를 만들고,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도 재미있게 가르쳐야 해요.
그런데 다들 1∼2년 지나면 누구도 보지 않을 논문만 쓰고 있잖아요.
설령 의미 있는 연구가 나와도 사장되고 있어요.
미국 사회학계처럼 논문을 쉽게 풀어서 언론에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간적 삶의 조건도 제시해야 해요.
"
한국 사회학사 정리라는 전인미답의 성과를 낸 정 박사는 시야를 확대해 '근현대 학문의 지성사'도 발간할 계획이다.
한국 근현대 학술 역사를 전반적으로 조감한 저작으로, 원고는 거의 마무리됐고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정 박사가 이렇게 다른 학문의 역사까지 톺아보는 이유는 '학문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학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 문제는 강대국이 주도하고, 한국은 그 틀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면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며 "세계에 우리만의 학문 담론을 제시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학자를 연구자, 심지어 연구노동자라고 한다"며 "현실의 이익을 취하지 않고 공적 사안에 관심을 둔 채 사회 전체를 보려는 학자와 지식인이 살아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동안 학자들이 권력에 줄 서고 돈 따라 다니면서 권위와 자부심을 지키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 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학문인 사회학이 학문의 부활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우리만의 담론 제시할 시점…사회 전체 보는 지식인 살아나야" 사회학자 정수복(67) 박사의 서울 종로구 연구실 책장에는 '청개구리'라고 적힌 자그마한 카드가 있다.
책상 앞에서 작업을 하다 고개를 들면 이 카드가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정 박사는 지난 18일 연합뉴스 기자에게 "학자들이 담을 쌓고 자기가 배운 학파에 소속돼 좁은 틀 안에서만 연구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며 "조그만 주제를 놓고 고민하는 파편 같은 연구를 하지 말고 우물 밖으로 나가 다른 식으로 보는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20세기에 받아들인 서구 학문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파악하려면 총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며 "학문의 역사, 즉 학사(學史) 연구가 이뤄져야 한국 학계의 위치와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정 박사는 최근 한국 사회학 역사를 정리한 4권짜리 책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를 펴냈다.
한국 사회학 100년 통사를 돌아보고, 중요한 사회학자 11명을 뽑아 평전처럼 소개했다.
어려울 듯한 학술서이지만,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
그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역사학·철학·문학에 두루 흥미를 느꼈다.
귀국해서는 학계에 순조롭게 진입하지 못하고 시민운동과 언론 활동도 했다.
정 박사는 이 같은 독특한 이력 때문에 자신을 사회학계 '이방인'으로 규정한다.
"사회학사라는 게 사회학만 공부해서는 쓸 수가 없어요.
다른 학문을 배우고 여러 일을 한 경험이 집필에 도움이 됐죠. 이번 책에 실린 참고문헌이 2천200개 정도 되는데, 사회학 외에 다른 사회과학 서적과 인문학 논저도 많이 인용했습니다.
"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나 전성우 한양대 명예교수 같은 동료 사회학자들이 장대하고 방대한 저작이라고 호평한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는 곡절 끝에 빛을 봤다.
정 박사는 "사회학자 대여섯 명에 관한 글을 쓰고 나니 너무 지쳐서 출판사에 출간 의뢰를 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에 원래 계획대로 11명을 다뤘고, 그 과정에서 4∼5년이 더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완성한 원고를 학술과 교양 서적을 내는 출판사 여러 곳에 보냈지만, 역시나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다행히 서평 모임을 했던 푸른역사와 연이 닿아 책이 만들어졌다"고 털어놨다.
정 박사는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읽으며 사회학사 저술 활동에 매달렸다.
먼지 쌓인 논문을 찾아 하나하나 탐독하고 정리하는 일을 반복했다.
사회학자보다는 문헌을 파고드는 역사학자의 작업에 가까웠다.
그는 사회학이 근본을 다루는 학문이자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주류 사회학이 실증주의와 경험주의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지만, 분단 시대와 민중 연구에 천착한 비판사회학이나 한국 역사에 주목한 역사사회학도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며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책에 등장하는 사회학자 중에는 강단에 머물지 않고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인물이 여럿 있지만, 최근에는 '사회학의 위기'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사회학자들의 사회 참여가 뜸한 편이다.
정 박사는 "대학 체제가 변하면서 학자들이 현실적으로 응용할 수 있고 당장 쓸 수 있는 지식만을 생산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며 "기초 학문과 소양은 간과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회학이 위기에서 벗어날 해결책으로 '재미'와 '교류'를 꼽았다.
사회학이 보건, 복지, 여성, 가족, 환경 등 여러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학자들이 좋은 사회학 교재를 만들고,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도 재미있게 가르쳐야 해요.
그런데 다들 1∼2년 지나면 누구도 보지 않을 논문만 쓰고 있잖아요.
설령 의미 있는 연구가 나와도 사장되고 있어요.
미국 사회학계처럼 논문을 쉽게 풀어서 언론에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간적 삶의 조건도 제시해야 해요.
"
한국 사회학사 정리라는 전인미답의 성과를 낸 정 박사는 시야를 확대해 '근현대 학문의 지성사'도 발간할 계획이다.
한국 근현대 학술 역사를 전반적으로 조감한 저작으로, 원고는 거의 마무리됐고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정 박사가 이렇게 다른 학문의 역사까지 톺아보는 이유는 '학문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학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 문제는 강대국이 주도하고, 한국은 그 틀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면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며 "세계에 우리만의 학문 담론을 제시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학자를 연구자, 심지어 연구노동자라고 한다"며 "현실의 이익을 취하지 않고 공적 사안에 관심을 둔 채 사회 전체를 보려는 학자와 지식인이 살아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동안 학자들이 권력에 줄 서고 돈 따라 다니면서 권위와 자부심을 지키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 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학문인 사회학이 학문의 부활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