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트 라일란트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이란 이름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KBS교향악단이 신임 지휘자의 취임 연주회를 1주일 간격으로 개최한다. 코리안심포니는 지난 15일 취임한 벨기에 출신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43)가 이끄는 연주회 ‘빛을 향해’를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다. KBS교향악단은 지난 1일 임기를 시작한 핀란드 출신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41)이 처음으로 지휘하는 제774회 정기연주회를 28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29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연다. ‘국가대표 오케스트라’ 자격을 갖춘 악단이 어느 쪽인지 가늠할 좋은 기회다.

코리안심포니는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중 5장과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3번’, 슈만의 ‘교향곡 2번’을 선사한다. 피아노 신동으로 알려진 임윤찬(17)이 협연한다. KBS교향악단은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서곡’과 ‘레민카이넨 모음곡’,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준다. 2010년 쇼팽콩쿠르 우승자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협연한다.

취임 후 첫 음악회인 만큼 두 지휘자는 각자 자신있는 작품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내세웠다. 독일 뒤셀도르프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슈만 게스트’로 활동하며 슈만 전문가로 정평이 난 라일란트는 슈만의 ‘교향곡 2번’을 골랐다. 슈만의 정신분열적인 성격이 담긴 곡으로,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이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관현악곡을 쓰는 데 서툴렀던 슈만의 독특한 성향으로 인해 다른 교향곡과 달리 연주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려운 곡”이라며 “지금껏 경쾌한 선율을 들려주던 라일란트의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에타리 잉키넨
피에타리 잉키넨
잉키넨은 자신의 고국을 상징하는 시벨리우스의 대표곡 두 개를 선택했다. 잉키넨은 ‘지휘자 사관학교’로 불리는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지휘 공부를 한 젊은 거장이다. 평단에서는 핀란드 문화에 익숙한 잉키넨이 시벨리우스 레퍼토리의 정수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핀란드 작품들은 유럽 주류 작품들과 성격이 달라 그 지역 출신들이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마에스트로들의 합류로 국내 클래식계의 지평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라일란트는 프랑스의 메스 국립오케스트라, 스위스의 로잔 신포니에타 음악감독을 겸하며 프랑스 작품과 독일 낭만시대 레퍼토리 연주에 강점을 보여왔다. 잉키넨은 바그너, 브람스 등 독일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잉키넨은 독일 도이치방송교향악단과 일본 재팬필하모닉에서 수석지휘자를 겸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바그너 오페라의 성지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휘했다.

이들의 취임 기념 음악회가 두 악단의 ‘자존심 대결’로 비춰지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음달 코리안심포니의 악단 명칭에 ‘국립’을 추가하기로 해서다. 문체부의 방침에 대해 KBS교향악단은 “‘국립’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국격을 고려한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반대했다. KBS교향악단 노동조합도 “국민적 공감대 없이 명칭을 변경해선 안 된다. 국립교향악단의 뿌리는 KBS교향악단에 있다”고 주장했다.

두 악단의 뿌리 다툼은 1956년 설립된 서울방송교향악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악단이 1969년 국립교향악단으로 이름을 바꿨고, 1981년 운영권이 KBS로 넘어가면서 KBS교향악단이 됐다. 당시 국립교향악단을 이끌던 홍연택 상임지휘자(작고)가 상당수 단원을 이끌고 나와 1985년 설립한 게 코리안심포니다. 류 평론가는 “두 악단 모두 국립이란 타이틀에 얽매이지 말고 실력으로 정체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