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은 ‘기업 임원 처벌프로젝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국민연금이 올해부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를 내세워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대표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직접 대표소송을 하는 것은 해당 기업과 주주는 물론 국민연금 자체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대표소송은 기업임원 처벌 프로젝트…투자자에게도 손해"

“국민연금 대표소송 실익 없다”

16일 경제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기업 이사 등이 위법행위로 주식 투자자가 손해를 봤음에도 기업이 책임 추궁 등을 게을리 하면 수탁위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기금운용본부가 소송 제기를 결정하고, 수탁위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나선다.

전문가들은 수탁위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본부 대신 시민·사회단체의 입김이 강한 수탁위가 나서면 정치적 판단에 따른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기업활동 및 영업에 제약이 생기고,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법정에서 구체적인 손해액을 입증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리고, 소송 과정에서 비용도 든다.

국민연금이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은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업에 돌아가기 때문에 연금 가입자는 직접적으로 이득을 볼 수 없다. 기업도 상환받을 손해배상금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재무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소송 과정에서 기업 평판이 나빠지고 주식가치가 떨어지면 주주와 가입자 모두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전 국민 노후 보장이라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쓸데없이 기업을 자극하는 행위를 시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연금이 패소하면 비용 부담은 가입자 몫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도 타격을 받고 경영에 제약이 생긴다. 이기든, 지든 어느 쪽이든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제도를 운영 중인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는 공적 연기금이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건 사례는 거의 없다. 대신 해당 기업과의 물밑 협상을 통해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실익’을 챙기고 있다. 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자국 기업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은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활동 무대만 넓혀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명예교수는 “기업 대표소송은 헤지펀드나 할 만한 일”이라며 “국민연금이 이런 행보를 계속하니 연금사회주의를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미 규제 넘치는데”…속타는 기업들

소송 대상이 될 기업인들은 애만 태우고 있다. 공개적으로 국민연금을 비판했다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최근 주요 대기업 임원들의 문의와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7개 경제단체가 지난 10일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추진을 전면 재검토해달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소송 당사자가 된 임원은 물론 해당 기업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기업규제 관련 법안이 잇따라 도입되고 있는데 대표소송이 제기되면 기업은 불필요한 자원과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국민연금이 소송을 남발하면 국내 기업 임원들에게 소극적 행동을 강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공격적인 행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업인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도 지금은 기업 규제를 늘리기보다 기업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상법, 공정거래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규제가 넘쳐나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전방위적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도한 규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병욱/고재연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