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주말드라마 '설강화' 스틸
/사진=JTBC 주말드라마 '설강화' 스틸
JTBC 주말드라마 '설강화'에서 민주화 역사 왜곡 우려를 자아내는 설정들과 관련해 한국학을 연구하는 국내외 석학 32명이 공개적으로 디즈니 플러스에 서한을 보내며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공개 서명에 참여한 서이지(CedarBough Saeji) 부산대 국제학부 교수는 11일 한경닷컴에 "'설강화'와 같은 작품은 한국 우파들이 펼치고 싶은 역사적 해석일 수 있다"며 "디즈니 플러스와 같이 글로벌 OTT 플랫폼이 다수의 국가에 이를 보여주는 건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서이지 교수는 한국 문화를 전공했고, 국내 뿐 아니라 외신에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와 영향력과 관련해 기고 활동과 인터뷰를 해왔다. 세계적인 '한류 전문가'로 불린다.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 있다가 지난해부터 부산대에서 강의를 해왔다.

서이지 교수는 "한국인이 한국 역사를 배울 방법은 많다"며 "뉴스를 통해 '설강화' 속 설정 중 틀린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사를 '학습'해야만 하는 외국인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습득한다"며 "외국인의 경우 생소한 한국사를 '설강화'를 통해 그대로 받아들이게 돼 그 위험성이 더 커지는 듯 하다"고 우려했다.

또 "수많은 드라마들은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언어로 지원되는 자막을 제공받지만, 한국사와 관련된 양질의 도서, 웹사이트는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제외한 타 언어로 지원하는 자원들을 찾기 어렵다"며 "'더 킹'과 같은 드라마는 역사가 아닌 것이 자명하지만, '설강화'와 같은 작품은 다르다"고 우려를 표했다.

배윤경 조지아공대 한국학 교수 등 26명은 지난 10일 루크강 월트디즈니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사장에게 "디즈니 플러스에 제공되는 한국드라마 '설강화:Snowdrop'에 대해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편지를 쓴다"면서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현재 해당 서명에 참여한 교수 및 학자들은 총 32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드라마 방영을 중단하도록 요청하는게 아니다"면서도 "창작자의 상상력을 존중하지만, 실제 인물, 사건이 언급되는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을 ('설강화'에서) 사용하면서 이전까지 항쟁했던 사람들의 주장을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게 한다"면서 특히 외국의 시청자들이 한국의 역사를 오인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우려했다.

이와 함께 크게 '설강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은영로와 그의 아버지 은창수 캐릭터 설정이 실존 인물과 비슷함에도,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르게 묘사되는 부분을 지적했다.

은영로의 기획 단계 이름은 은영초였다. '설강화'의 시놉시스가 공개됐던 지난해 3월 실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천영초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논란이 불거지자 JTBC 측은 해당 캐릭터의 이름을 '영초'에서 '영로'로 바꿨다.

학자들은 천영초에 대해 "매우 독특하고 특이한 그의 이름을 사용하는 건 매우 부적절했다"며 "'설강화'는 여주인공 '영초'와 북한 간첩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데, 실제 천영초 씨의 남편인 정문화 씨는 공산주의자이며 북한 지지자로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학생들 사이에 북한 간첩이 있었고, 학생들은 너무 순진하다'는 '설강화' 속 설정과 서사를 전하면서 실제로 반공 선전 피해자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라고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극중) 이름은 바뀌었지만, (현실에서) 공산주의자나 간첩으로 의심됐던 사람들이 체포, 고문, 심지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며 "북한 간첩의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끔찍한 인권 유린이 허용됐고, 이런 공포심은 독재정권의 초법적인 활동을 일반 대중에게 수용하도록하는 핑계였다"고 전했다.

또한 남파 간첩인 남자 주인공 수호가 독일에서 유학한 학생의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설정된 것에 대해 "실제로 독일에서 유학한 많은 학생들이 북한 간첩으로 기소돼 투옥됐다"면서 '동백림 사건'과 관련한 영문 기사를 첨부했다.

또한 은영로의 아버지 은창수에 대해 "캐릭터에 대한 검토를 회사에 촉구한다"며 "드라마와 웹사이트에 공개된 공식 캐릭터 프로필에서 은창수는 '권위추의 체제에 꺼려하는 참가자, 깊은 곳에서 좋은 원칙을 가진 갈등하는 남자'로 정의되는데, 이게 적절한 묘사인지 묻는다"면서 초법적 권력과 악명 높은 고문, 살해 행위를 자행했던 안기부의 수장이 허구일지라도 긍정적이고 동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은창수의 약력이 1980년 광주 학살을 주도한 박준병 장교와 유사한데도, 그가 독재 정권에 마지못해 협력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