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교수 '열하일기 연구' 개정판 32년 만에 발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초판본 보완·논문 3편 추가…"소탈한 언동·풍자 후대에 수정" 분석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780년 청나라 건륭제 칠순 잔치 참석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 뒤 남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학술서인 '열하일기 연구' 개정증보판이 32년 만에 나왔다.
연암 연구에 오랫동안 매진한 김명호 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쓴 '열하일기 연구' 초판본은 창비가 1990년 펴냈다.
이 책은 열하일기를 완결된 작품으로 보고 문학·역사·철학 관점에서 두루 들여다본 탁월한 저작으로 평가됐다.
당시 학계에서 열하일기는 북학론을 설파한 사상서로 인식됐고, '허생전'이나 '호질' 같은 소설만을 뽑아 분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절판된 탓에 젊은 연구자들이 읽기 어려워졌고, 재출간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돌베개가 발간한 개정판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는 저자가 30년 넘게 축적한 학업 성과를 바탕으로 보완한 초판본에 해당한다.
2부에는 초판본 간행 이후 저자가 발표한 열하일기 관련 논문 3편을 실었다.
부록인 박지원 연보도 대폭 보완했다.
초판본을 담은 1부는 목차를 7장에서 6장으로 조절했다.
연암의 사상을 논한 부분에서 서학(西學) 영향을 강조하는 쪽으로 논지를 수정하고, 정조가 펼친 문예정책과 문단 반응을 설명한 부분도 내용을 보강했다.
저자는 1부 결론에서 "연행(燕行·사신이 중국에 가는 일) 이전의 연암 문학은 열하일기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났다"며 "열하일기는 여느 연행록처럼 유람의 부산물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의식과 남다른 노력의 소산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고문체로 쓴 탁월한 산문으로, 문체가 다양하다는 점도 열하일기의 특징으로 꼽고 "북학파의 사회개혁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지만, 기존의 보수적 사고 틀을 완전히 타파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부에 게재한 논문 주제는 '도강록 호곡장론의 문체 분석', '일신수필 서문과 동서양 사상의 소통', '열하일기 이본의 특징과 개작 양상'이다.
'호곡장론'은 연암이 드넓은 요동 벌판을 보고 느낀 소감을 적은 글이고, '일신수필'은 열하일기에서 1780년 음력 7월 15일부터 23일까지 '소흑산'(小黑山)에서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한 대목이다.
저자가 특히 공들여 작성한 논문은 열하일기 이본(異本)을 분석한 마지막 글로, 분량이 131쪽에 이른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생전에 지속해서 보완했고, 후손들이 편찬하면서 손질을 가해 이본이 50종을 넘는다고 알려졌다.
어떤 서적을 연구의 기준이 되는 정본(定本)으로 삼을 것인지에 따라 연암 사상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열하일기가 나중에 고쳐진 부분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연암의 소탈한 언동을 무난한 표현으로 바꾸거나 중국 여인의 미모를 묘사한 부분 등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또 주자학에 대한 비판을 완화하고, 지나친 해학과 풍자를 수정하는 양상도 확인된다고 짚었다.
그는 "열하일기에 대한 보수적 문인들의 비판이 강해지자 연암과 그의 아들 박종채, 손자 박규수가 개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증보판 서문에서 "출간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책은 열하일기에 대한 '거의 유일한 본격 연구서'로 남아 있다"며 "숙원 사업이던 '열하일기 연구' 수정 증보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에야 겨우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증보판을 만들고자 애쓰는 동안 젊은 시절 나의 지도교수가 되어 그의 글을 자상하게 고쳐 주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며 "당시 30대의 신진 학자였던 나와 시공을 초월해 학문적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842쪽. 4만5천 원.
/연합뉴스
연암 연구에 오랫동안 매진한 김명호 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쓴 '열하일기 연구' 초판본은 창비가 1990년 펴냈다.
이 책은 열하일기를 완결된 작품으로 보고 문학·역사·철학 관점에서 두루 들여다본 탁월한 저작으로 평가됐다.
당시 학계에서 열하일기는 북학론을 설파한 사상서로 인식됐고, '허생전'이나 '호질' 같은 소설만을 뽑아 분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절판된 탓에 젊은 연구자들이 읽기 어려워졌고, 재출간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돌베개가 발간한 개정판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는 저자가 30년 넘게 축적한 학업 성과를 바탕으로 보완한 초판본에 해당한다.
2부에는 초판본 간행 이후 저자가 발표한 열하일기 관련 논문 3편을 실었다.
부록인 박지원 연보도 대폭 보완했다.
초판본을 담은 1부는 목차를 7장에서 6장으로 조절했다.
연암의 사상을 논한 부분에서 서학(西學) 영향을 강조하는 쪽으로 논지를 수정하고, 정조가 펼친 문예정책과 문단 반응을 설명한 부분도 내용을 보강했다.
저자는 1부 결론에서 "연행(燕行·사신이 중국에 가는 일) 이전의 연암 문학은 열하일기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났다"며 "열하일기는 여느 연행록처럼 유람의 부산물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의식과 남다른 노력의 소산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고문체로 쓴 탁월한 산문으로, 문체가 다양하다는 점도 열하일기의 특징으로 꼽고 "북학파의 사회개혁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지만, 기존의 보수적 사고 틀을 완전히 타파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부에 게재한 논문 주제는 '도강록 호곡장론의 문체 분석', '일신수필 서문과 동서양 사상의 소통', '열하일기 이본의 특징과 개작 양상'이다.
'호곡장론'은 연암이 드넓은 요동 벌판을 보고 느낀 소감을 적은 글이고, '일신수필'은 열하일기에서 1780년 음력 7월 15일부터 23일까지 '소흑산'(小黑山)에서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는 여정을 기록한 대목이다.
저자가 특히 공들여 작성한 논문은 열하일기 이본(異本)을 분석한 마지막 글로, 분량이 131쪽에 이른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생전에 지속해서 보완했고, 후손들이 편찬하면서 손질을 가해 이본이 50종을 넘는다고 알려졌다.
어떤 서적을 연구의 기준이 되는 정본(定本)으로 삼을 것인지에 따라 연암 사상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열하일기가 나중에 고쳐진 부분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연암의 소탈한 언동을 무난한 표현으로 바꾸거나 중국 여인의 미모를 묘사한 부분 등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또 주자학에 대한 비판을 완화하고, 지나친 해학과 풍자를 수정하는 양상도 확인된다고 짚었다.
그는 "열하일기에 대한 보수적 문인들의 비판이 강해지자 연암과 그의 아들 박종채, 손자 박규수가 개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증보판 서문에서 "출간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책은 열하일기에 대한 '거의 유일한 본격 연구서'로 남아 있다"며 "숙원 사업이던 '열하일기 연구' 수정 증보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에야 겨우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증보판을 만들고자 애쓰는 동안 젊은 시절 나의 지도교수가 되어 그의 글을 자상하게 고쳐 주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며 "당시 30대의 신진 학자였던 나와 시공을 초월해 학문적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842쪽. 4만5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