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은 월 12만원도 안돼…장기 독재로 부패·양극화 심화
연료비 급등으로 촉발된 카자흐스탄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근본적 원인은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극심한 양극화 때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달부터 차량용 액화석유가스(LPG) 보조금 지급 중단과 가격상한제 폐지를 시행했고, 이에 하룻밤 사이에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 시위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근본적인 원인은 장기간 이어진 집권 세력의 부패와 극심한 양극화라고 WSJ는 진단했다.

카자흐스탄은 이전부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옛 소련 국가 중 하나로 여겨졌다.

석유와 석탄, 귀금속, 우라늄 등 막대한 천연자원을 봉한 덕분에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유치, 주변 국가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따른 경제적 과실은 정부와 가까운 기업인들이나 권력자들이 고스란히 독차지한 상황이다.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전체 부의 55%를 단 162명이 점유하고 있다.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 억만장자 명단에는 광산과 은행업 부문에서 5명의 카자흐스탄인이 올라 있다.

반면 카자흐스탄의 최저임금은 월 100달러(약 12만원)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독일에 본부를 둔 노동경제학연구소(IZ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소수가 부를 독점한 이 같은 시스템에서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들 소수 집단의 이익만을 반영하게 된다"고 짚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특히 자산가들이나 권력층의 부패가 시위대 분노의 원천이 됐다고 WSJ은 지적했다.

카자흐스탄은 2020년 기준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180개국 가운데 94위에 올라 부패 수준이 높은 편이다.

자산가들 대부분은 카자흐스탄을 떠나 영국 런던 등 해외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국제 금융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권력을 독점한 소수층의 부패가 쌓여온 것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고위층의 부패를 일소하고, 국유재산을 사유화해 (혜택을 나눠주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이런 문제들이 임계점을 넘어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고 WSJ은 분석했다.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러시아·유라시아 선임연구원인 나이젤 굴드 데이비스 전 벨라루스 주재 영국대사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놀랄만한 규모의 불안정과 무질서는 이번 시위가 연료 가격 상승에 대한 단순한 불만 그 이상임을 보여준다"며 "연료 가격 급등은 시위의 방아쇠가 되는 동시에 불만의 보다 깊숙한 원천에 불을 당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말하면, 카자흐스탄은 소련 이후 시기에 중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성과를 냈고, 주변국에 비해 훨씬 나은 경제적 기록을 써나갔다"면서 "하지만, 그런 사실이 이번과 같은 보기 드문 사태를 막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