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 물적분할한 뒤 다시 상장하는 데 대한 개인투자자의 반발이 거세다. 기존 주주들은 신설 자회사의 주식을 한 주도 받지 못하는 데다 중복 상장으로 기존 모회사의 기업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물적분할을 준비 중인 포스코가 지난 4일 이사회를 열어 정관에 사실상 재상장은 없다고 못 박았을 정도다. 하지만 기업들은 신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려면 ‘물적분할+재상장’만큼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신설 법인을 상장할 때 기존 주주에게 주식 청약 우선권을 주면 어떨까.

“우리사주처럼 기존 주주에 우선 배정”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물적분할 및 동시 상장에 따른 소액주주 보호 방안’을 마련해 조만간 공개 제안할 예정이다.

상장협이 마련한 대안은 ‘물적분할 이후 재상장 시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배정권을 주는 것’이다. 주식 공모 청약 때 임직원에게 우선권을 주는 ‘우리사주조합원 우선배정권’과 비슷하다. ‘물적분할 결의 시점에 모회사 주주이면서 자회사 공모 당시까지 계속 주식을 보유 중인 주주에 한해’ 증거금 등 청약 절차에 따라 신주를 배정하자는 것이다. 핵심 사업부를 분할한 뒤 다시 상장하면 기존 주주가 해당 사업의 과실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을 감안했다.

다만 선배정 한도, 즉 ‘신주를 얼만큼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 배정할지’는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상장협 관계자는 “해당 사업부문을 물적분할이 아니라 인적분할했을 때 각 주주가 배정받을 수 있는 주식 수를 기준으로 선배정 비율을 정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하는 신주인수권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배정은 청약하지 않으면 권리가 그대로 없어지지만 신주인수권은 그 권리 자체를 사고팔 수 있다. 물적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주는 방식에 대해서는 “기존 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부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처럼 주식매수청구권을 주자’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지분율에 비례하지 않는 인적분할 등 극소수 조건에서만 기존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준다.

물적분할+재상장 법으로 막자는데…

상장협의 아이디어가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물적분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일 한국거래소에서 물적분할 후 재상장 제한과 관련한 토론회를 연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개미 표심’을 잡기 위해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물적분할 후 모·자회사 동시 상장 관련 규정 정비’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신사업 분할 상장 시 투자자 보호 강화’를 각각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각에서는 법적으로 모·자회사 동시 상장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하지만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을 제도적으로 금지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새로 규제가 도입될 경우 기존에 물적분할 후 상장한 회사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도 할 말은 있다. 신규 사업을 키워서 기업가치를 높이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이때 ‘물적분할+재상장’은 효과적인 자금조달 수단이다. 다른 대안도 마땅치 않다. 공모 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 지분율이 낮아져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보유하도록 해 지분율을 사수해야 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